뻘짓

by 떰띵두

가끔 황당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결코 나는 그 생각이 황당하다 생각진 않지만 나 아닌 타인에게는 이것만큼 황당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생각인 것이다..

그 황당한 생각들이 그냥 허무맹랑한 생각으로 묻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뻘짓으로 그 생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이었지 싶다.

아직까진 나에게는 경제력이 없음에 명절 때에나 새 옷을 한벌쯤 얻어 입을 수 있었다..

그 외엔 터울이 꽤 있는 언니의 옷들을 입고 다녀야 했다.. 그 덕에 또래친구들에 비하면 세련되고 성숙한 차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나는 새 바지를 한벌 선물 받았었다.. 짙은 회색 검은색에 가까운 아주 짙은 회색의 진이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옷을 이래저래 살펴보니 어찌 뒤집어진 바지의 색깔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냥 뒤집어 입고 다닐까 생각했지만 바지 앞 자크 부분이 뒤집어 입으면 뒤집어진 옷인 게 티가 너무 나는 통에 잠깐 고민에 잠겼고, 나는 엄마가 큰맘 먹고 사준 새 바지를 그날 밤 칼로 일일이 뜯었다.

조각조각으로 해체된 새 바지를 밤새워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두꺼운 천이라 바느질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손가락은 아파오기 시작하고 시간은 결과물에 비해 엄청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이면 분명 엄마는 새 바지를 입고 등교하는 내 모습을 기대할 텐데 새벽까지도 나는 바지 한쪽 버지가랑이도 제대로 바느질하지 못했다..

이럴 어쩌나..

아침이 시끄러울 예정이었다..

결국 나는 엄마께 거짓말을 해야 했다.

학교 행사일에 입으려고 아껴둘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을 얻었지만 몇 날 며칠을 밤새워 바느질을 해도 조각낸 바지는 내 생각대로 예쁜 색깔의 새 바지로 만들어지는 게 점점 힘든 상황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바지 앞 여밈이 있는 후크 부분이랑 자크 부분이었다.

이것은 내 실력 밖의 것이었다.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도둑바느질을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했건만 결국 완성된 건 바짓가랑이 두 짝뿐 바지에 다리를 넣고 입어도 앞을 여밀 수 없으니 입을 수 없는 옷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도 며칠을 더 고생을 했지만 나는 결국 외출용으로 입고 다닐 새 바지를 만들지 못했다..

그냥 집에서 입고 뒹굴 정도의 바지로 되돌려 놓았다.

참 생각처럼 되는 게 쉽지 않구나..

나는 엄마가 큰맘 먹고 사준 새 바지를 거의 열흘이상의 밤시간을 투자하고서는 내 맘에 쏙 드는 색깔의 엉성하고 어정쩡한 바지를 만들어 냈다..

결국 일요일 아침 내가 리폼한 새 바지를 입고 아침 밥상에 앉았을 때 엄마는 눈이 똥그래져서는 어처구니없는 듯 한마디 하셨다.

'또 또 또... 너 이제 새 옷은 없는 줄 알아!! 밥 먹어'

나는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아침밥을 야무지게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그동안 미뤄뒀던 밤잠을 보충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나의 주특기 뻘짓의 기억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가끔 얘기한다..

누군가에겐 아무 소용없는 어처구니없는 뻘짓에 불과하더라도 니 생각에 해볼 만한 거다 싶으면 해 보라고 말이다..

뻘짓도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바로 노하우가 된다.

해보지 않으면 결코 모르는 것이거든.

생각만 하기보단 뻘짓이라도 하고 나면 결과물을 얻게 된다.

그것이 모여 내 자산이 되고 그 자산이 나를 웃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지금의 뻘짓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0년쯤 후의 나를 상상하면서 가슴 설레는 이 뻘짓에 충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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