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빠는 우리 오남매를 키우는 것에 몰두하셨고, 소위 지연 학연 혈연관계의 끈이 협소했던 아빠는 오로지 열심히 발버둥 치며 살아오신 듯하다.
그런 아빠가 나는 언제나 안쓰러웠지만 존경했다.
나는 이런 내 아빠의 위대함을 자랑하고픈 마음에 성공하고자 했었다.
아빠를 떠올리면 언제나 땀 흘리며 환하게 웃어주시던 모습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빠모습에 참 많이 마음 아팠던 일이 있다.
우리 오형제 시집 장가 다 가고 손자, 손녀까지 있어 소위 말하는 이제는 조금 쉬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면서, 일상을 즐기셔도 될 즈음이었지만 아빠는 여전히 초등학교 야간 당직일을 하고 계셨고 그때가 내 기억엔 아빠가 70세가 되던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우리는 아빠의 생신축하를 위해 가든을 예약하고 모처럼 야외로 가족들이 총출동을 해서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막내 올케는 아빠의 칠순을 축하드린다는 현수막까지 만들어 왔었다.
그때는 그랬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 칠순은 청춘이니 팔순에 팔순 잔치를 해드리겠노라 하고 칠순은 가족들끼리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웃고 떠들면서 술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리는 다들 스스로 이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라 지금의 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배불리 먹고 술도 한잔 되고 하니 흥이 오르고 그곳에는 우리들처럼 이런 흥 오른 자들을 위해 노래방 기계가 완비되어 있었고 음치들의 집합체였던 우리 가족은 노래방 기계에 번호를 열심히 예약해 두고는 열심히 노래를 불러재꼈고, 노래 부를 것에 제일 자신이 없던 아빠도 이 날은 한 곡조 뽑아 올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