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멈추지 않았다

by 민디

현실이 다시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밤이 깊어질때까지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아침이었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이미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

집안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한숨이 앝게 흘러나왔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지문이 인식되며 짧은 진동이 손끝에 남았다.

앱아이콘들이 빼곡히 늘어선 화면 위에서 손가락이 잠시 맴돌았다.

통장앱을 눌렀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은 잔액.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안했다.

안심하기엔 모자랐고 , 무너지기엔 애매한 금액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구직 알림 신규채용 공고.

알림 창 위에 엄지가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눌렀을 것이다. 아니 다른 검색창을 먼저 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움직여도 될까?"


누구에게 허락을 구하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 늘 확인부터 하려 했다.

몇 초가 길게 늘어졌다.

이내 화면을 껐다.

작은 선택이었지만 , 방향을 틀어버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확인하지 않고 시작해 보기로 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바닥에 발이 닿는 감각이 유난히 차갑게 전해졌다.

화장실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콸콸 쏟아졌다.

차가운 물을 얼굴에 여러 번 끼얹었다.

물소리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또렷해졌다.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며 거울을 바라봤다,

무기력에 잠식됐던 어제의 얼굴과는 조금 달랐다.

아주 미세하지만 , 어딘가에 의욕이 남아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캘린더를 확인했다.

아무 일정도 적혀 있지 않은 날짜들이 조용히 이어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켰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바탕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 폴더 하나를 열었다.

이력서 파일.

파일은 '최종'이었다.

몇 번째 최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마우스를 한번 클릭했다. 커서가 파일 위에 얹혔다.

더블 클릭을 하지 못한 채 손이 멈췄다.

심장이 느리게 뛰고 있었다.

파일을 여는 순간, 다시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몇 초 후, 손을 천천히 떼었다.

파일은 여전히 닫힌 채였다.

하지만, 오늘은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았다.


유정은 자기소개서 파일을 열었다.

마우스를 천천히 내리며 문장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다시 보니 몇 줄이 마음에 걸렸다."왜 이렇게 썼지"낮게 중얼거렸다.

그 문장을 지웠다.

잠시 멈췄다가 , 다시 써 내려갔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남의 눈을 먼저 떠올리지 않았다.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 속으로 되뇌었다.


눈을 질끈 감은채 지원 버튼 위에 커서를 올렸다.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숨을 한번 고르고, 또 한 번 고른 뒤에도 손은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방안에는 정적만이 고여 있었다.


아직 혼자 결정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짧은 클릭음이 울렸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모니터에는 '제출완료'라는 글자만이 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불안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아주 작은 움직임은 있었다.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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