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참스승 세 분과 통화를 마치며

by 모퉁이 돌

오늘은 41번째 스승의 날이다.


학창 시절, '참스승'을 많이 만난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이맘때면,

인연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는

세분의 스승님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

#1. [삼천포 초등학교 박** 선생님]


선생님은 5학년 때 담임이셨다.


늘 단아하셨고 미소가 예뻤다.


그땐, 주번(청소당번)이란 게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늦은 오후,

교실 양철통 화목난로 안에 쌓인

재를 치운답시고

빗자루로 재를 쓸어내 쓰레받기에 담았다.


그리곤 몇 번이고 쓸어 담은 그 재를

교실 뒤 파란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부어 놓고 집에 갔다.


다음날, 학교에선 난리가 났다.


플라스틱 쓰레기통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려 있었고

교실 뒤 벽체는

천장까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식은 줄만 알았던 재가

열기를 품고 있었던 거다.


담임 선생님은 교장, 교감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는지 계속 울고 계셨다.


나는 학교를 다 태워 먹을 뻔했다는

죄책감과 선생님에 대한 죄송함으로,

온종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두려운 나머지, 친구들 눈을 피해서

복도 끝 계단 아래 숨어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여차저차 집에 갔고 일기장을 폈다.


선생님이 일기 숙제잘하고 있는지

매일 검사하시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으며

한두 줄 감상평을 달아주시던

그 일기장이었다.


나는 한 바닥 빼곡한 반성문으로

그날 일기를 대신했다.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을

선생님께 전하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

평소처럼 일기장을 제출했다.


그날 오후 다시 받은 내 일기장에

선생님은 이렇게 써놓으셨다.


"석찬아, 미안해하지 마.

청소 잘해보려고 그런 거잖아.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는 거야. 알겠지?"


선생님은 연약하기만 했던

유년기 나의 뼈대를

올곧게, 단단하게 잡아주셨고

리더의 비전도 꾸준히 심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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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천포 제일중학교 김** 선생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1년 초봄 신학기.


중학교 입학식 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데 방송에서 계속 나를 찾아댔다.


교무실로 가니까 선생님 한 분이

입학생 대표 선서를 해야 한다며

원고를 주셨다.


반편성 배치고사 결과,

운 좋게도 성적이 가장 잘 나왔나 보다.


어쨌든 얼떨떨한 기분으로

전교생들 앞에서 나름 씩씩하게 선서를 했다.


그날 오후였던가,

다음날 오후였던가.


학교 현관 복도 중앙에서

말다툼 끝에 친구랑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몸집이 그리 큰 편은 아니어서

소싯적 간혹 드센 친구들이

시비를 걸어왔었다.


싸움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기는 싫어했다.


당시 체육선생님이던 김** 선생님은

나와 그 친구를 불러

하루 종일 벌을 세우셨다.


억울하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고

눈물 콧물 다 쏟아냈던 것 같다.


나중에 선생님은 서로 화해토록 만드셨다.


그런데 그 일이 선생님과 가까워진 계기였다.


선생님은 만능 스포츠맨이시다.


나도 웬만한 스포츠는 곧잘 한다.


같이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면서 친해졌고 친구네 배를 함께 타고

선생님과 바다낚시도 즐겼다.


선생님은 따스한 젠틀맨이시다.


공부도 좋고 운동도 좋지만,

늘상 바르게 자라다오 말씀하셨다.


어떤 친구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았고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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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주 명신고등학교 황** 선생님


서부경남(사천, 남해, 하동, 산청, 함양,

거제, 통영, 합천, 의령 등등) 중학교에서 공부를 조금 잘하면

대부분 고등학교는 교육도시로 유명한 진주로 간다.


나도 고향을 떠나 진주에서

3년간 하숙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해군사관학교에 지원을 했었다.


내신성적을 보는 1차 시험에선 붙었는데,

2차 신체검사에서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같이 여관방을 잡은,

반 친구는 합격했다.


너무 상심이 커서,

여관방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진해 어느 슈퍼마켓에 들러

88 멘솔 담배랑 소주 한 병을 샀다.


흡연은 예나 지금이나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땐, 극도의 좌절감과 반항심에

못 피던 담배(그래도 박하향 멘솔)를 찾고

잘 마시지도 못하던 깡소주를

마냥 마셔대고 싶었을 게다.


다음날 진주 하숙집에 복귀했다.


학교 가기가 싫었다.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학교에 안 갔다.


오전 10시가 넘었으려나?


하숙집에 담임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는 척하던 나를 조심조심 깨우셨다.


일어나라, 학교 가자 그러신다.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울컥했다.


그렇게 선생님 차를 타고

늦은 등교를 했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퇴직하셨고

지리산 자락에서 글을 쓰신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에는

자선냄비를 알리는 구세군으로 활동하신다.


선생님은 40대 중반을 향하는

이 제자에게 종종 안부 메시지를 보내신다.


나이가 들어가니 예전처럼

너무 격하게 일하지 말라 하신다.


기력의 60~70%만 써라

신신당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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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나는 교회에서

우리 반 중3 남학생 제자들에게

스승의 날 선물을 받았다.


주일학교 교사이지만

부족하고 연약한,

그래서 그저 부끄럽기만 한 사람인데...


앞으로 아이들을

부지런히 더 잘 섬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