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따라 산다.

내 이름은 박하영.

by 박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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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예쁘거나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박하영'이라는 이름은 이효리처럼 이름을 거꾸로 해도 똑같거나, 필기체로 썼을 때 영어 이름이 색다르게 보인다는 특별한 점도 없는 이 세상 수많은 이름 중 하나일 뿐이다.'박'이라는 성이 조금 투박하지만 '하영'이라는 이름에 둥근 발음이 많아서 오히려 잘 어울린다고는 생각한다.


사람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뜻이 무엇일까 혼자 유추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한자 이름을 사용하니까 내가 아는 몇 없는 한자를 총동원해서 대입해본다. 처음 보는 특이한 이름이거나 유추가 어려우면 이름의 뜻을 직접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당사자들은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조금 쑥쓰러운 듯한 표정으로 뜻을 말한다. 모든 이름이 특별하지만, 그 중 눈에 띄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머쓱해하는 것 같다. 이런 이름의 뜻을 물어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가 사람들의 이름 뜻을 알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깃든 최초의 기대와 소망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자음과 모음이 합쳐진 세글자 안에 깃들어 있는 좋은 기운을 담아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이름의 뜻과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뜻이 너무 찬란하거나 무거워서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기독교 문화에서는 흔한 이름이지만 종교가 없는 친구들은 당연히 한자 이름인 줄 알았는데 한글 이름이었다며 신기해한다. 삼행시 같은 뜻의 나열도 새롭나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끙끙 거리며 자신의 한자 이름을 쓸 때 한글 이름인 나는 '훗'하고 웃으며 여유롭게 이름 석 자를 완성하곤 했는데, 그 시절에는 단순히 내 이름 몫의 한자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린 나는 내 이름의 주축이 되는 '영광'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영광'의 사전적 의미는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혹은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빛'이다. 부모님은 내가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혹은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내 이름을 지어주신 것이다. 십대 후반이 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나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난생 처음 언니의 이름을 부러워했다. 우리 언니의 이름은 '하은'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의 뜻은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혹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 시절 내가 직관적으로 느끼고 머리를 굴리며 해석한 바로는, 언니의 이름에 대한 부모님의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입어 잘 살아가라.'였고, 나의 이름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성스러운 빛이 되어라.'였다. 전자는 하나님이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삶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삶이었다.




부담스러웠다. 나는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보다는 뜻을 뗀 이름 석자처럼 평범한 것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빛이 될 리도 없고 그것을 위해 고군분투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름의 뜻을 바꾸기로 했다. 호적의 이름을 바꾸거나 하는 큰 일탈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중국어시간에 중국식 이름을 지을 때, 나는 이름에 한자 뜻이 없으니 마음에 드는 한자를 찾아 뜻을 만들어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받들어 밤이 새도록 한자사전을 뒤적인 것이었다. 그렇게해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새로운 뜻은 '행운 하'의 '꽃뿌리 영'. '행운이 깃든 꽃'이었다. 만족스러웠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행운이 깃든 꽃' 혹은 '행운을 가져다 주는 꽃'이라는 뜻을 담아 불러준다면 기쁠 것 같았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훨씬 부담스럽지 않고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나는 좋은 뜻이었다.


새로운 뜻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뜻을 가져간 나에게 선생님은 '행운 하'라는 한자는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럴리 없다며 한자 사전을 다시 한 번 훑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난 밤 열심히 찾아놨던 한자는 없었다. 심지어 무슨 생각인지 한자는 써놓지도 않고 뜻만 써놔서 내가 어떤 한자로 착각했는지 알 수도 없었다. 행운을 지닌 꽃이 되어 민들레처럼 사뿐사뿐 살고 싶었던 나의 꿈은 사라져버렸다. 대신, 선생님은 '여름 하'를 추천하셨다. 당시 나는 더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여름을 못 견뎌 할 정도로 더위를 많이 탔기 때문에 이름 뜻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여름 꽃'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이름대로 살면서 정말 여름에 스며들었는지,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여름이라는 계절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여름에 피는 꽃은 무성하고 푸르른 생명의 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여름 꽃의 꽃잎과 풀잎에는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가 있다. 여름 꽃 한 송이마다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빛'이 어려있다. 모든 계절을 겪으며 제 때 피고 제 때 지는 여름 꽃처럼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처럼 사는 모습이었다. 그토록 반발심이 들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삶'이 사실은 '여름에 꽃을 피워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자, 이름에 얹혀있던 부담감이 사르르 녹았다. 때마침 주일학교 시절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솔로몬의 모든 영광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여름 꽃' 그 어딘가를 살아갈 것이다. 이제는 내 이름을 따라 흘러가도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을 닮은 여름꽃처럼 피어나는 삶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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