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가정이란 건 뭘까
나는 어릴 적부터 TV 속 만화를 즐겨 봤다. 그 안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따뜻하게 챙기고, 힘든 일이 생기면 함께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다. 저녁마다 웃음이 가득한 식탁 앞에 둘러앉은 모습은 언제나 따뜻해 보였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보며 ‘나도 저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런 가정 안에 속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따뜻하기만 한 가정은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그래도 따뜻한 순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친할머니가 해주시던 강된장국을 참 좋아했다. 그 시절 내게 친할머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나를 '똥강아지'라 부르던 할머니.
꼭 잡아주던 그 주름진 손길.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할머니.
보고 싶다.
그런데 따뜻했던 몇몇 장면보다, 더 자주 마주했던 차가운 순간들이 마음속에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어느 순간부터 ‘따뜻한 가정’이라는 건 TV 속에서나 존재하는 환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녀였던 나는 상주가 되었고, 많은 어른들이 슬퍼하며 울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슬퍼야 하는 거야.’
그래서 울었다. 아니, 우는 척을 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흘려야만 할 것 같아서 연기하듯 눈물을 흘렸다. 장례식이 끝난 후, 처음으로 어머니를 마주했다.
장례식장에는 오지 않았던 어머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제 누군가는 나를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을 두고 떠났다. 어쩌면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벗어나고 나니 그리웠다. 내 고향은 참혹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운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혼자 살게 된 후로 많이 외로웠다.
혼자 먹는 밥.
혼자만의 공간.
드디어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는 곧 고독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집’이란 건 나에게 애증의 공간이다. 집에서 웃기도 하고, 슬퍼서 엉엉 울기도 하고, 신나게 춤추기도 했다. 만화처럼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그런 곳은 세상에 없다.
그래도 나는 말할 수 있다. 삶에 불행만 가득한 인생은 없다고. 그리고 나는, 내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