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2
당신의 추억의 책은 무엇인가요?
최근 책 관련 행사를 갔다가 들은 질문입니다. 저는 질문을 듣자마자 <겁쟁이 윌리>라고 답했습니다. 답을 하고 스스로 놀랐습니다. 오랫동안 <겁쟁이 윌리>를 까먹고 있었는데, '추억의 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기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책이 순식간에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겁쟁이 윌리>는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입니다. 벌레 하나라도 죽일까 봐 조심조심 걷는 소심한 윌리는 겁쟁이라고 놀림받지 않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결국 윌리는 몸집이 아주 커져서 윌리를 괴롭히던 일진(?)들이 오히려 윌리를 보고 놀라 도망가게 되는데요. 그렇게 자신감이 생긴 윌리는 독자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다가 마지막에 전봇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윌리는 당황하며 전봇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저는 어릴 때 정말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뭐든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어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참... 도덕적인(?) 아이었어요. 저는 그런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답답하고 약해 보였거든요. 그런 저와 윌리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윌리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지! 하고 위로를 받았던 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자기 전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에 항상 <겁쟁이 윌리>를 들고 갔어요. 그러면 엄마는 책을 읽다가 마지막에 윌리가 전봇대에 쾅하고 부딪히는 장면이 나오면, 침대에서 일어나 직접 넘어지는 척을 했고, 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깔깔 웃다가 잠잘 시간을 놓치곤 했어요. 이 기억이 너무 좋아서 <겁쟁이 윌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고, 앤서니 브라운 같은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었죠.
문득 성인이 된 지금 <겁쟁이 윌리>를 다시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한 블로그를 보게 됐습니다. 글쓴이는 윌리는 처음부터 겁쟁이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아, 저는 여기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소심하고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강해 보이는 모습을 이용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용감하고 겁쟁이가 아닌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쁜 사람인 거죠.
윌리는 여러 노력 끝에 '외적'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용감한 모습으로 바꿉니다. 하지만 윌리는 몸이 커졌다고 해서 누군가를 괴롭히기는커녕, 전봇대에 부딪히면 오히려 사과를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윌리를 보고 여전히 겁쟁이고,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저도 윌리의 성격이 완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바뀌지 않아도 될 부분이 바뀌지 않은 것이죠. 윌리는 소심한 자기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저는 윌리가 섬세하고 배려심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윌리는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가꾸면서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따뜻한 심성은 유지한 것이죠.
"윌리야, 굳이 크고 강해지려고 하지 마. 그저 가는 길만 잘 보면 돼."
누구나 자신감 없고,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겠지요.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선천적인 것도 있고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내가 약점이라 생각했던 점은 사실 강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크고 강한 것만이 정답이 아니고, 애초에 이 세상에 정답이란 없으며 뭐든 내가 정하기 나름이니까요. 윌리는 겁쟁이었던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 같습니다. 외적인 모습이 바뀌고 나서야 조금씩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물론 외적인 모습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면요.) 하지만 그전에 나를 사랑하고 아껴준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굳이 외적인 모습을 바꾸지 않아도 자신감이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스스로를 겁쟁이 타이틀에서 도망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윌리> 출간 30주년 기념 인터뷰 영상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캡처해서 가져왔습니다. 시간 되신다면 풀버전을 시청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책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책을 다시 읽어 보는 건 어떠신가요? 저처럼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