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칼럼

by 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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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나라의 운명이 걸린 국민투표로 소란한 1946년 이탈리아. 과거에 없던 투표권이 생겼지만 여전히 발언권은 없는 산투치 가문의 며느리 델리아는 오늘도 딸 마르첼라의 결혼식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던 어느 날 델리아 앞으로 의문의 편지가 도착하고 델리아는 난생처음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우는데…


*스포 있음



며칠 전, 왓챠피디아 예상 별점 4.6이라는 높은 점수에 이끌려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를 봤다. 소개글의 '투표권'과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여성 참정권을 다루는 페미니즘 영화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1946년, 가난한 여성 델리아는 남편의 가정폭력과 가족들의 무시 속에서 살아간다. 딸 마르첼라로부터 “엄마는 왜 떠나지 않아?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말이다. 델리아는 길에서 마주친 옛 연인이 함께 떠나자고 제안할 정도로 모두가 그녀에게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델리아에게 의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편지를 읽고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운다. 딸에게 그동안 남편 몰래 모아두었던 돈을 학비로 사용하라며 주고 (델리아의 남편은 여자가 무슨 학교냐며 아들에게만 교육 기회를 주었다), 새로 산 옷을 입고 남편에게 일을 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한 채 집을 나선다. 하지만 이때 델리아는 그 의문의 편지를 떨어뜨리고 만다. 뒤늦게 편지를 확인한 남편은 델리아를 찾아 나서고, 이후 딸 또한 편지를 확인하고 이 둘을 뒤쫓는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였다. 어떤 사람이 서류를 꺼내라고 하자, 델리아는 그제야 자신이 의문의 편지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낙심한다. 그때 누군가가 델리아를 툭 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딸 마르첼라였다. 딸이 건넨 서류를 들고 델리아가 입장한 곳은 다름 아닌 투표소였다.


나는 당연히 델리아가 사랑하는 남성과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 줄 알았다. '과연 저 남성은 믿을 만한 사람일까?', '델리아가 떠나면 딸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틀렸던 것이다. 나의 생각은 구시대적 사고라는 듯, 델리아는 연애편지 대신 투표권을 쥐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고, 스크린을 향해 욕을 퍼붓고 싶다가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화면 너머로 보고 있는 나조차도 내일이 그려지지 않는데, 실제로 저 시대에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과연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며, 내가 절대 그들을 불쌍한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훌륭하고 멋진 여성들을 집 안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여성의 능력을 무시하는 사회의 안목에 동정하려고 하기로 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역사는 인류의 긴 역사에 비하면 지극히 짧다. 과거에 비해 여성들은 분명 더 많은 자유와 기회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 구조적인 불평등, 일상 속 미묘한 차별이 뿌리내려 존재하고 있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영화관에는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여성 관객이었다. 네이버의 '평가를 남긴 전체 실관람객수에 대한 성별 비율'은 남성 34%, 여성 66% 로 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남성 관심도가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와 같은 페미니즘 영화가 다양한 관객들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페미니즘이 그저 손가락질받거나 특정 집단의 이념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보편적인 가치임을 모두가 알아주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고, 그 내일은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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