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돌아오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짐을 풀고, 세탁기를 돌리고, 다시 익숙한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여행이 남긴 것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떠나 있을 땐 몰랐다.
그곳의 공기가 특별해서 좋았는지,
함께 있었던 마음이 가벼워서 좋았는지.
사진 속 풍경은 분명 아름다운데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어느 골목의 햇살이나,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걷던 발걸음 같은 것들이다.
돌아오면 늘 허전하다.
여행 가방은 비워졌는데
마음 한편에는 아직 접히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며칠간은 괜히 창밖을 오래 보게 되고,
그곳에서 마셨던 음료의 맛을
집에서도 흉내 내보게 된다.
여행이 남긴 가장 큰 변화는
그리움이 아니라 태도다.
같은 하루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다.
전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저녁노을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건넜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고마워진다.
여행은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길을
조금 덜 급하게 만들어 준다.
잘 쉬었다는 확신 하나로
다시 일상을 견뎌낼 힘을 남겨둔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도망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돌아오기 위해 떠났던 시간,
조금 숨을 고르기 위해 멈췄던 순간들.
여행이 끝난 자리에는
사진보다 느린 변화가 남는다.
조금 덜 조급해진 마음과,
예전보다 사소한 것에 머무를 줄 아는 나.
아마 다음 여행을 또 꿈꾸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여행이 남기고 간 이 온기를
조심스럽게 데리고 살아보려 한다.
돌아온 뒤에도,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