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by 구미어리

‘구미어리’라는 나만의 명사까지 있을 정도로

나에게 있어 일기를 쓰는 행위란 나를 표현하고,

나를 보관하며 나를 기억하는 일종의 추억 상자였다.

나는 주로 마음에 거센 파도가 일어 요동칠 때나

불안한 마음에 나를 저 끝까지 갉아먹을 때

바닥의 끝까지 나락으로 찍어버려 나 자신이 별 볼일 없이

형편없게 느껴질 때.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에서

일기를 쓰곤 했다. 그래서 행복의 기억보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더 깊이 박혀 유독 잔상에 오래 박힌다.

그 기억들은 쉽게 끊어낼 수 없을뿐더러

더군다나 마음에 잘 담아두는 터라 평생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된다.

어릴 적 쓰던 일기는 당연히 써야 하는 숙제였고 그 숙제가 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글쓰기가 참 재미있었다. 시간이 흘러 좀 더 자라서 쓰는 일기는 하루의 마무리를 기록하는 매일의 자아 성찰이었으며, 지금의 어른이 되어 쓰는 일기는 불안함에 잠식되어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때마다 쓰는 자아비판의 향연이었다. 그래서 한 동안 이곳을 드나드는 것이 참 무서웠다.

왜냐하면 여기에 글을 쓴다는 건 그날의 내가 여전히 누군가로 인해 혹은 무엇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뜻이기에 그 상황을 마주하고 기억하며 기록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마냥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고 주변환경과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날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런 나를 위로하듯 내미는 손길들을 거부하지 않고 감사히 받아들이니 마음이 많이 건강해진 것 같다.

나 자신의 마음이 성숙해진 상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만큼 건강해졌고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생겨난 것 같다.

한동안 무서워 드나들지 못했던 이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나 자신이 행복으로 채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나들지 않게 된 것 같다.

매일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의무감으로 써 내려갔던 일기였는데

과감히 쓰지 않게 된 지도 몇 달이 훌쩍 넘어버렸다. 계획이 흐트러지면 온 세상이 끝날 듯 절망적이 되는데 일기 하나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다고 내 세상이 절망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매일매일이 행복하면 좋겠지만은 세상 살다 보면

매일매일이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제는 혼자서 아파하거나 삭히지 않고 입 밖으로 털어내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에너지가 되고 싶다. 내가 먼저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서 말이다.

오늘은 내 마음에 파도가 일어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닌

벅차도록 귀한 소중함을 누군가로 인해 알게 된 감사함을 기억하기 위해 적어보았다. 두려워서 피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이곳에 찾아와 그때는 마냥 신나는 마음으로 좋은 말들을 써내려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삶과 죽음의 경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