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레니
메론: "육아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제 표현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왜 특별히 이 키워드에 끌리셨는지 궁금해요.
레니: (웃음) 제가 원래 틀에 박힌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지후를 키울 때도 항상 아이가 즐겁고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가치관이 있거든요. 퇴근하면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지후랑 노는 거예요. 놀아주는 게 아니라, 진짜 같이 노는 거죠.
"얘가 뭘 좋아하지?" 생각하다 보면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해서, 저희 집에서는 케이팝 틀어놓고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이 많아요.
요즘 교육 트렌드가 너무 어린아이들을 프레임에 가두는 것 같아 그게 참 싫더라고요. 그래서 지후랑 아빠가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 수 있을까 늘 고민해요.
메론이 어떤 의도로 '펀, 쿨, 섹시'라는 키워드를 던지셨는지는 몰라도, 세 단어 모두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들이에요. 제가 실제로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쿨하고 멋진 사람이고 싶고, 지후에게도 그런 모습이 투영되었으면, 또 그런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공부 잘하고 능력치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매력적인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그 키워드를 봤을 때 머릿속에서 '땡!' 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걸 메론이 어떻게 아셨지?" 싶었죠.
저희 부부가 어릴 때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체능 쪽에 대한 갈증이 지금까지도 남아있거든요. 저희는 좀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지후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요. 지후가 노래 따라 하는 걸 보면 음감이나 표현력이 뛰어나 보여요. 남원산성 민요 부르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음정이 거의 정확하더라고요. 해보내기 잔치 때도 사실 다른 아이들보다 발성이나 음정, 표현력이 좋았어요. 내 새끼 자랑 같아서 말은 못 했지만요. (웃음) 자신이 잘하는 걸 재미있어하는 게 최고잖아요. 지후에게 매일매일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내가 좋아하는 게 나한테 재밌는 일이야"라는 연결고리가 항상 있었으면 해서 늘 같이 부딪히며 놀려고 노력해요.
메론: 말씀을 듣고 보니 이미 기승전결이 다 정리된 느낌이네요. (웃음)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지후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일반 학교를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대안학교를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레니: 사실 지금은 대안학교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어요. 저희가 사전정보 거의 없이 덩더쿵을 선택했어요. 그냥 "이런 곳이면 좋겠다"라고 막연히 그리던 부분과 덩더쿵이 추구하는 것들 – 예를 들면 인지 학습 규제, 야외 활동, 유기농 식단 같은 – 이 잘 맞아서 오게 됐죠. 와서 지내다 보니 대안학교에 대한 고민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지금 생각은 일반 학교에 가서 적응하는 것도 우리 몫인 것 같아요. 아이를 천년만년 품 안에서 ㅡ키울 수는 없으니까요. 세상은 대안학교 아이들하고만 어울려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메론: 대안학교 아이들과 일반학교 아이들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레니: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겪은 일이 있는데, 제가 어떤 아빠와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아버지만 멋쩍게 인사를 받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아이가 아빠에게 "저 삼촌이 우리한테 왜 인사하는 거야?"라고 묻더군요. 아빠가 "이웃이니까 인사하시는 거지"라고 했는데, 아이는 "이웃인데 왜 인사를 해?"라고 되물었어요. 그 말을 듣고 좀 충격이었어요. 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서로 인사를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너무 철저히 교육하는 건지... 물론 단편적인 이야기지만, 조금은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추측하게 되죠. 덩더쿵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어른들은 좋은 사람이고, 우리는 보호받는다"라고 배우는데, 그 친구들은 "어른이 나쁠 수도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 피아노, 미술을 꽤 오래 시키셨지만, 결국엔 공부였어요. 저는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는 게 훨씬 재미있었거든요. 가끔 농담처럼 "내가 덩더쿵에서 컸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이유가, 저희 엄마가 공동육아를 경험하셨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게 꽤 분명했거든요. 부모님 세대에는 예체능 길이 너무 좁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커서 보니 공부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넓은 길은 없어요. 그런 성장 과정을 겪다 보니 지후에게는 더 폭넓은 선택지를 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제 어릴 적 모습이 지후에게 투영되기도 하고, "이거 시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들고요.
메론: 얼마 전 대장초등학교 축제에서 중고등학생들 춤 공연을 봤는데, 아이들이 정말 즐기면서 추더라고요. 얼굴에 예술을 즐기는 사람 특유의 열려 있음이 느껴져서 긍정적으로 봤어요. 유안이도 그걸 굉장히 몰입해서 보더니, 초등학교 들어가면 저런 걸 배워보고 싶다고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더라고요. 물론 저는 즐기는 수준에서 생각하지만요. 지후는 예술 쪽의 끼나 감수성이 뛰어나다고 느껴져요. 그런 재능이 선행학습 같은 틀에 갇혀 규격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레니: 맞아요. 그게 바로 저인 거죠. (웃음) 그렇다고 엄마를 원망하거나 후회는 없어요. 남들처럼 입시 준비하고 대학 생활도 해봤으니까 지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겠죠. 경험을 해봤으니 아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후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많이 시켜주고 싶어요.
저희 둘 다 사실 도전 정신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그걸 지후에게 어떻게 심어줘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해보는 거죠. 엄마 아빠도 처음이니까요. 지후가 처음에 덩더쿵에 왔을 때는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강했고,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어요. 그런데 5살 때 개별 면담에서 선생님이 "지후가 무지개 미끄럼틀을 날아다녀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경계심이 다 허물어진 거죠. 스스로 걱정은 되지만 자꾸 도전해 보는 모습을 보였을 때, 사실 좀 울컥했어요. 안 될 줄 알았거든요. 엄마 아빠 닮아서 그냥 그런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많이 깨달았어요. 아이를 너무 그렇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라라: 그래서 아이가 할 수 있다고, 내디딜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느꼈어요. 물론 지금도 잔소리가 많지만, 믿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요.
레니: 저는 개인적으로 그때 지후의 변화를 보면서,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옆에서 동반자가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덩더쿵에 보내기 전에는 "하지 마", "이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때의 지후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속상하죠.
라라: 가정 보육할 때는 저희만의 틀, 저희가 살아온 환경이 만들어낸 틀 안에 지후를 또 맞춰 넣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욱여넣었죠. 그래서 지후도 틀이 생겨버렸는데, 여기 와서 그걸 본인 스스로 깨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가 부족했구나. 얘는 할 수 있는 아이인데 우리가 너무 가뒀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레니: 그때 이후로 제 사고방식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라라: 그래서 "지후는 지후다." 엄마 아빠의 딸이 아닌, 그냥 지후로 자랄 수 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메론: 그게 바로 "Fun하고 Cool하고 Sexy하게" 육아하는 거네요.
라라: 네, 그렇죠. (웃음) 그렇게 키우려면 저희가 진짜 쿨하게 지후를 지켜볼 줄도 알아야 하고, 또 같이 재미있게 즐길 수도 있어야 하고요.
레니: 저희가 펀, 쿨, 섹시하지 못했지만, 지후를 통해 바뀌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어쩌면 원래 각자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육아하면서 잠시 잊었다가 아이를 통해 "아,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하고 상기하는 걸 수도 있고요. 지후를 통해 정체성을 되찾았다고 할까요. (웃음)
라라: 정말 육아하면서 저도 같이 크는 것 같아요. 가정 보육할 때는 마냥 너무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는 저도 크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메론: 가정 보육은 누구나 힘들어서 오래 할 수 없어요. 멘탈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한계가 오더라고요. 다들 세 돌 정도에서 소진되는 것 같아요. 그 정도면 할 만큼 하신 거예요.
라라: 맞아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여기서 많이 듣고 위안을 받아요.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여기 와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마음을 알아주니까 그 말이 참 와닿더라고요.
인터뷰어: 메론
인터뷰이: 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