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까미 (교사)
푸른 쪽빛을 찾아서..
올해로 쪽 농사를 3년째 아이들과 짓고 있다.
목표는 천연 쪽 염색으로 푸른색을 만나는 것이다.
천연염색을 통해 아이들은 색이 풀과 꽃, 나무 같은 자연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에서 뽑아낸 색의 아름다움은 인공의 색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의 아름다움이 있다.
직접 천에 물을 들이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색의 아름다움과 가까이 만나게 된다.
붉은색은 소목, 노랑은 치자로 어렵지 않게 낼 수 있다. 먼저 하나를 염색하고 뒤에 다른 염료를 덮어 염색하면, 자연스레 색이 섞이니, 주황까지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파랑을 내는 염료가 귀하다는 건데, 파랑 없이는 더불어 초록, 보라도 만들 수 없다. 파랑을 만들어내는 재료는 자연에서 매우 귀하다. 당시에 쪽가루 또는 니람 (쪽잎을 발효시켜, 패분을 섞어서 만드는 진흙 같은 질감의 염액) 염색으로 파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매염제, 가성소다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아이들과 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던 중, 생 쪽 염색으로 파랑을 낼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고 하여,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에 물어물어 방법을 알아보았다. 글로, 귀로 배웠다. 이제 실전이 남았는데, 문제는 생 쪽잎을 어디서 구하느냐이다.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씨앗을 구해 직접 심기로 마음을 정했다. 온라인으로 쪽 염색하는 농장을 찾아 전화로 연락해 쪽 씨앗을 사고 싶다고 하였다. 소주잔 한 컵정도의 양에 3만 원 이란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흠칫하고, 주저하였으나 파랑을 만나는 여정에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법이라고 위안하며, 씨앗을 구매했다.
쪽 씨앗은 3월에 싹을 틔워 5월에 본밭에 정식한다. 그러면, 7월 경이면 풀이 다 자라 염색을 할 만큼 자란다고 한다. 뜨거운 물에서 장갑 끼고 조물대며 염색해야 하는 다른 천연염색들과 달리, 생 쪽 염색은 얼음물에서 한다고 한다. 생쪽을 수확시기는 한 여름, 얼음물에 하는 염색이라니..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마음속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랐다.
글로 만난 쪽 염색 정보 들은 각자의 경험이 쌓인 결과물 일 뿐,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누구는 쪽이 키우기 어려운 작물이라 하고, 누구는 한 해살이 풀이라, 씨앗을 1년밖에 못 쓴다고도 하였다. 꽃이 피고 나서 바로 수확해서 갈아서 얼음물에 넣고, 천이 떠오르지 않도록 눌러가면서 염색하라고 하였다. 글로,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음으로 이미 쪽 염색 마스터가 되었다.
첫 해 쪽밭의 쪽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그동안 쪽이 어찌 생겼는지도 몰랐었는데, 길쭉한 줄기가 올라와 이파리들이 무성하게 달리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키우기 어렵다더니 잘만 자랐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쪽 꽃이 피었을 때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꽃이 예쁘기는 또 얼마나 예쁜지.. 텃밭에 갈 때마다 감탄을 하면서 즐겼다.
이때다 싶을 때, 쪽을 수확했다.
염색을 위해 줄기째 끊어다가 믹서기에 오래도록 갈고, 면포에 담아 얼음물에 담그고 아이들과 꾹꾹 눌러가며 오래도록 염색을 하였다. 쪽 가느라 사용한 믹서기가 파랗게 물이 들 정도이니, 천에는 틀림없이 푸른빛이 물 들었으리라..
결과는... 너무나 은은한 옥빛이었다. 김이 많이 빠졌지만.. 이게 최선인가 보다 했다. 이 색이 쪽 색이려니.. 했다.
두 번째 해 쪽밭에는 작년에 쪽 꽃에서 떨어진 쪽 씨들이 무수히 새싹을 올려댔다. 겨우내 쪽꽃을 말리고, 채종 해 놓은 고생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쪽 씨앗들이 언 땅을 밀어내고 올라와 금세 푸진 쪽밭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동안 나의 쪽 정보도 조금 업데이트가 있었다. 생각보다 색이 연해 실망했다는 이야기에 오래 쪽염색을 했다는 사람은 내가 했던 방법을 듣더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쪽을 착즙기로 즙을 짜내고, 얼음 많이 띄운 물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 팍팍 밟아가면서 염색하는 거라고 한다. 손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아.. 그게 문제였구나.. 올해는 진정 푸른빛을 만나리!
들살이 날, 작정을 하고 준비를 했다. 미리 갈아 얼려둔 쪽잎을 얼음 엄청 많이 넣은 물에 담그고, 아이들에게 장화를 신기고 물에 들어가 팍팍 밟았다. 비가 쏟아지는 마당에서 아이들에게 푸른빛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생 쪽 염색을 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오히려 작년보다 더 옅은 옥색이었다. 거기에 더해 돌아오는 길에 감물 염색 된 천들이 같이 엉켜서 오는 바람에, 기껏 생쪽 염색 한 천에 감물이 들어버렸다. 감물 특성상 천이 뻣뻣해지고, 색이 짙은 갈색인 데다가, 얼룩덜룩하게 묻어 도저히 복구 불가였다. 눈물을 머금고 전량 폐기. 그렇게 2년의 쪽농사, 생쪽 염색이 아쉽게 지나갔다.
올해 세 번째 도전, 올해는 조금 다르다.
올해 초부터 기다려온 강의를 들었다. 한국의 쪽을 복원해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 전통 방식의 쪽 염색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기업 ‘킨디고’에서 쪽염색 마스터과정이 해마다 열린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거다! 제대로 해보자! 싶어 학기가 열리기도 전에 미리 연락해서 주말 수업이 언제 열리는지 문의하였다. 모집이 시작되면 꼭 좀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하며 미리 대기를 걸었다.
올해는 꼭! 푸른 쪽빛을 만나리..
3월이 되어 이론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재를 받아 들고, 선생님의 쪽 이야기, 우리 민족의 쪽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운명적인 울림이 느껴졌다. 내가 이곳에 오기 위해 지난 2년간의 도전과 아쉬움의 목마른 과정을 지나왔구나.. 싶었다.
우리 쪽은 한해살이풀이다. 잡초 과인 데다, 싹이 올라오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려서, 자연에서는 쉽게 도태된다. 누군가 쪽밭을 일부러 일구지 않으면 금세 사라진다는 뜻이다. 우리의 쪽은 전쟁과 식민지를 거치고, 먹고살기 바빴던 개발도상국의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 선생님의 선생님께서 민가에서 보관하던 쪽씨를 어렵게 구해 복원에 성공하였고, 동의보감과 전통 쪽염색 방법을 찾아 오랜 연구와 실험으로 지금의 쪽 염색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수업 과정에서 나는 우리 문헌 (동의보감)에 나온 전통 쪽 염색 방법에 과학적 이론을 결합하여, 쪽이 푸른 염색이 되는 근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하여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쪽의 수많은 약성과 쪽 염색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청대’라는 물질의 약성을 의학기관과 함께 박사논문으로 쓰신 내용까지 덤으로 배울 수 있었다. 쪽은 염색의 재료일 뿐 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오래된 약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업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동안의 생 쪽 염색의 오류들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생 쪽 염색으로 얻는 빛깔은 옥빛이 아니라 푸른빛!이라고 하였다. 슬프고도 기쁜 이 기분..
지금은 니람을 이용해 발효, 산화, 환원의 과정 속에서 염색하는 발효 쪽염색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 선생님의 쪽 염색법은 가성소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쪽물을 다시 환원시켜 사용할 수 있어서 염색한 물을 버리지 않고 다시 재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더 이상 염료가 나오지 않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마지막에는 밭에 훌륭한 액비가 된다.
아~! 너무나 친환경적이며, 몸에도 좋은 신통방통한 쪽!!
게다가 빛깔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염색을 반복할수록 푸른빛이 깊어지고 짙어진다. 맑은 하늘빛으로 시작했다가 깊은 가을하늘이 되었다가 어느새 바다 빛이 되어있다.
경험으로 아는 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그 푸른빛을 쉽게 만날 수는 없다. 과정에 진심을 다해야 하고, 쪽물에 귀를 기울여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건강한 푸른빛을 만날 수 있다.
5월 현재, 쪽 모종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곧 본 밭에 정식할 예정이다. 올해 생쪽 염색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올해부터 옮긴 새로운 텃밭에서 정성 다해 키운 쪽으로 진짜 푸른빛을 만나보려 한다. 덩더쿵이들은 이 쪽빛을 어떻게 만날까? 어떻게 느낄까? 어떻게 표현할까? 어떻게 확장이 될까? 덩더쿵이들은 항상 교사의 기대보다, 교사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 청출어람-靑出於藍(쪽/람)을 기대해 본다.
by 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