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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Oct 06. 2021

일평생 헛소리를 하며 산다는 것

동시에 일평생 헛소리를 들으며 산다는 것

1. 모두가 개소리를 한 번쯤 한다.


말이 세서 좋아하지 않지만, 이보다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말을 찾기가 어렵다.


개소리(bullshit).


<개소리에 대하여>를 읽었다. 작가의 말처럼, 개소리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개소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먼저, 책에서는 '개소리'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개소리는 공들여 지어낸 거짓말과 분명하게 구분되며, 실제 사태가 어떠한지에 대한 '생각 없음'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내가 지금까지 해온 말이 전부 개소리가 아니었을까, 하고 무서워진다.


우리는 여태껏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하며 말을 내뱉어왔는가?




2. 나는 당신과 내가 언제나 틀릴 수 있음을 잘 안다.


깊게 생각하고 실제 사실에 근접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개소리의 오명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한 진실과 입 밖으로 내뱉는 이야기가 언제나 사실에 가까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멋대로 판단하고 이해한다고 착각(생각)하는 것은 무지보다 위험하다.

자신감 있는 개소리(bullshit)는 누군가에게 사실처럼 다가갈 수 있으니, 우리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때 신중해야 한다.


특히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나, 당사자의 이야기를 면전에서 할 때에 더 그렇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보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판단해 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듣는 사람, 본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3. 하지만 나는 우리의 틀림이 의도적이지 않았음을 믿고 싶다.


바로 위에서 착각 옆에 (생각)이라고 써 놓음은, 우리가 착각할 당시 그것이 착각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착각은 밝혀지기 전까지, 그저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주 내에서 지각하고, 인지(해석)한다. 항상 이물질이 끼어드는 것은  바로 이 '해석'의 과정이다. 해석은 인간의 메모리를 거쳐 이뤄지는데, 메모리는 그 사람의 경험과 관련이 깊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오는 글을 떠올려보자.

그래서 나는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움이나 선함을 사실상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보다는 현명하다고.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약간 우월한 것 같았습니다.

그는 "한 인간의 사유의 폭과 깊이는 그 사람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기에 모를 수 있고, 모르기에 틀릴 수 있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은 아직 내 경험이 그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며, 내가 틀리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미리' 알았다면, 누가 그를 바로잡고 싶지 않아 하겠는가?


틀림은 일어나고 나서 알아차릴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누구의 틀림도 의도적이지 않다고 믿고 싶다.




4. 그래서 상처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의 단정적이고 감정적인 말에 쉽게 휩쓸리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

타인이 나에 대해 내린 평가와 실제 나의 의도가 다를 수 있음을 알기에, 실망하지 않는다.


대신, 발전을 위해 사람이 아닌 상황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지"가 아닌, "왜 이런 말을 지금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집중한다.


결과에 집중하는 것보다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된 과정에 대해 생각하고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때로는 말도 안 되는) 평가에 상처 받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배운다.




5. 그리고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것이 대부분 개소리라고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살겠는가.


우리는 대화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또한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의 사실이 나에게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마음속 깊은 기저에 깔아 두고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하지만 상처 받지 않을 단단한 마음으로 대화해야 한다. 편향(bias)을 멀리하자. 스스로 자문하며 사유하는 시간을 통해 현상을 객관화하자.


그리고 부디 상처 주지 말고, 타인이 내게 상처 내도록 허락하지도 말자.




.

.

.

마치기 전에, 글을 읽으며 '나는 그렇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 글은 당신 같은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개소리를 하거나, 개소리에 상처 받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지금 그러한 상태라고 한다면, 부디 주변 사람들에게 여태껏 그래 왔듯, 당신이 가진 삶의 자세를 보였으면 좋겠다.


본문에 언급했듯, 한 사람의 사유는 그 사람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저 아직도 이따금 개소리를 하면서, 쏟아지는 개소리를 들으며 사는 사람이 본인의 경험을 통해 행한 얕은 사유라고 치부하고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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