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의 행방이 묘연하다. 어딘가에 있겠지. 어디에도 없더라도 타격이 없다. 그게 문제다. 아니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처음이 아니다. 2020년 2월부터 8월 중순까지 애플워치를 쓰고 팔았다. 한 달 넘게 방치된 시계를 갖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2021년 11월에 새로 또 샀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모를까, 있다 없으니까 괜히 더 간절해지는 이상한 심리. 언제부턴가 요가원에 가면 사람들 손목만 보이기 시작하더니 애플워치가 무기력에서 벗어날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저것만 있으면 운동에 미칠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혔다가, 결정적으로 애플워치7 사전예약 마케팅에 넘어가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랍시고 질렀다. 한동안은 확신이 적중한 듯했다. 아니 적중해야 해서,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더 매달렸다.
세 달 정도 지속됐다. 친구와 링 겨루기를 하면서부터 집착에 불이 붙었고, 무엇이든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내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요가 두 타임도 모자라 아파트 헬스장을 등록했고 주말은 등산과 배드민턴으로 꽉꽉 채웠다. 더 걸으려고 비효율적인 동선을 선호하기도 했다. 하루에 800-900칼로리의 기록이 내 하루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것 같았다. 애플워치가 삶의 동력이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랑 링 겨루기 하자고) 추천하던 시절..
지금은 그때의 열정이 온데간데없다.
애플워치가 어딨는 지도 모르겠다.
기록을 보니 마지막으로 차고 나갔던 게 11월 3일이다.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충전은커녕 찾은 적도 없으니 없어져도 할 말은 없다. (코로나 격리 동안 활동링 달력에 공백이 생기고 의욕이 팍 사그라들었다.) 한때는 손목이 그렇게 허전하고 남들 손목에 애플워치밖에 안 보이더니 이제는 자유로운 손목 상태가 좋아졌다.
그렇게 싱겁게 끝날 진심, 숱한 변심, 감정적 소비.. 마음을 가득 채웠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없이 버려진 것들
애플워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지기 직전까지만 간절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 그런 존재가 많다. 색다른 체험과 흥밋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든 다양한 자극으로 삶을 채워나갈 수 있다. (쇼핑, 주식, 연애, 악기, 드라마, 여행, 체험, 창작, 맛집, 수집, 영화, 클라이밍 등등) 삶은 타오르는 열정과 변덕, 한눈팔기의 반복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의 목소리'는 잠꼬대와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간절히 꿈을 꾸지만, 그저 꿈에 불과한 한때의 허상. 꿈에서 깨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들. 잠깐 깨어났다가도 금방 잠들어버리는 인생.
잠과 깸 중에 뭐가 나은 건지, 어떤 꿈이 좋은 건지 아무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