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술 마시러 오는 사람
혼자 오는 아저씨가 있다.
늘 웃는 얼굴로 친한 척을 하는 사람인데,
자기는 친구가 없다며 혼자 와서
김치우동과 소주 한 병을 기본으로 시킨다.
근데… 조용히 그렇게 드시고 가면 좋겠지만
(아니다. 사실 별로 안 좋다. 돈이 안 된다.)
문제는, 다른 손님들에게 말을 붙인다는 거다.
작은 술집 특성상 대화가 오가긴 좋지만,
이 아저씨는 막 다가가서 합석하자,
형이라 불러라, 오빠라 불러라,
여기는 오늘 내가 쏜다—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실제로 쏜 적은 있긴있다.
젊은 여자 손님들하고 합석해서
“지금까지 먹은 건 너희가 계산하고,
이 다음부터는 내가 쏜다!”)
그래서 나는 그를 ‘진짜 상남자’,
줄여서 진.상이라 부른다.
“우와 아저씨, 진짜 상남자네요 ”
오늘도 왔다.
먼저 온 손님들이 축구를 보고 있는데
그 사이에 말을 자꾸만 보탠다.
“어휴 저 저 똥볼!! 아휴 저 개발!!
우리 같이 한잔 하시죠?
내가 오늘 여기 테이블까지 쏠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왜요?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 다른 데서 장사도 하고, 집도 바로 요 앞이에요.”
“저희끼리 마시고 싶어서 그래요!”
“저도 좀 끼워줘요…”
먼저 온 손님의 얼굴이 굳어가고,
그 일행 중 하나가 갑자기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부어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이거 마시면 합석하는 거다.”
마치 정우성이 손예진에게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하던 장면처럼…
아… 정말.
우리 진.상 아저씨는 눈치도 없이
술도 잘 못 마시면서 그걸 기어코
다 마시고 합석을 했다.
합석하니 행복한지
“몇 살이냐? 49? 나는 50이다!
내가 형이다. 말 놓을게.
집은 어디냐. 무슨 일 하냐. 돈은 얼마 버냐…”
있는 무례, 없는 무례를 다 꺼내서
기침하듯, 숨 쉬듯 자연스레 무례를 저질렀다.
꼴보기 싫어서 주방으로 가려는데
먹잇감을 찾은 짐승처럼 나를 붙잡는다.
“우리 사장님 이쁘지? 영화배우 같지 않어?”
미친건가….
“하하… 왜 그러세요. 놀리지 마요.
다른 분들 욕해요.”
“근데 이쁜데 나이 많아.
40 넘었고 애도 둘이나 있어.
근데또 어린 척 해.”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쿠, 내가 실수했어?
결혼한거 말하면 안되는거야?
나이 말하면 안되는거야?“
아… 긁네?
하느님, 제가 이 불쌍한 영혼을
그쪽으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한자리 있습니까??
“하하하… 많이 취하셨네. 좀 조용해주세요.
입을 꿰매고 싶네. 하하하하.”
입은 웃었지만, 눈이 전혀 웃지 못했다.
손님만 아니면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을 테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그 사이 합석한 손님들은 담배를 태우러 나갔고
아저씨는 그들을 또 따라가 담배를 빌려 피웠다.
또 거기서 무슨 무례를 저질렀는지
한 손님이 인상을 쓰며 들어와서는
얼른 계산을 해버리고 나가버렸다.
아저씨는 들어오자마자 큰소리로
나간 손님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뭐 별 거지 같은 것들이 사람을 무시하고 말이야!
내 말이 틀렸어? 어? 사장님 안 그래?”
무슨말인지도 모르겠는데 취해서 주정까지 부린다.
참다 참다 도저히 눈감아줄 수 없어서 말했다.
“우리가게 와주시는 거 정말 감사한데
혼자 오셨으면 제발 혼자 조용히 드시고 가세요.
다른 분들 불편해하시잖아요.”
그 말에 아저씨 얼굴에 서운함이 스쳐 지나가며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늘 장난기 가득하던 웃는 표정이 사라지자
아저씨 얼굴이
이전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김치우동은 반도 건드리지 않은 채
계산을 하고 “사장님, 미안해…” 하며 나갔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심했나?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심하게 했다고…
창밖을 보니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걷는 아저씨가 보였다.
합석하고 싶어서 과음하더니
오늘은 정말 만취하셨다.
집은 잘 찾아가시려나 싶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인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미친…
미운 정도 정이라고 얼른 뛰어나갔다.
“괜찮으세요?”
“응… 안 괜찮아.
사장님, 내가 말할 사람이 없어.
딸래미는 대학교 가더니 얼굴 보기 힘들고,
마누라랑은 갈라선 지 오래됐어.
친구들도 다 멀리 살고…
여기 오면 그래도 누구든 있고,
사장님이나 어머니가 말 들어주잖어.
그래서 좋았는데…
민폐인 줄 몰랐네. 미안해.”
괜히 먹먹해졌다.
혼자 술집에 온다는 건
외로움과 함께 온다는 것.
‘진상’이라 라벨 붙이기 전에
그는 외로움을 풀 방법을 모르는
서툰 사람이었다.
“다음에 올게…”
하며 비틀비틀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다시 올 땐 ‘진상’이 아닌
‘조금 외로운 아저씨’로 바라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