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4년제 체육학과 학사에,
국가공인 보디빌딩 자격증, 미국공인 트레이너 자격증
그리고 바디프로필 사진까지 의기양양하게 걸어놨으니
이만하면 됐다.
이제 남은 건 수업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언제나 전문적이고 꼼꼼하게,
말투는 좀 차가워도
진심으로 회원님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트레이너가 이만하면 충분히, 아니 완벽하게 된 거 아니야?
근데 내가 왜 양아치 트레이너야?
"저는 쌤이 아니에요."
쿵쾅거리는 음악소리도, 바닥에 내던져지는 덤벨 소리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푸쉬업 자세 하나를 붙들고 씨름한 지 20분.
나 또한 내 등에서 흐르는 땀이 더워서 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애진작에 알고 있었으니
회원님도 내 얼굴에 답답함을 알아챘겠지.
'나는 이 50분이라는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걸 욱여넣어 주려고 애쓰는데,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는데 돈 안 아까워? 이번엔 정말 제대로 해보겠다며?'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한숨은 억지로 삼켜냈지만,
경련하는 입꼬리는 차마 끌어올리지 못했다.
"알겠어, 다시 천천히 해봅시다."
수업은 이미 얼어붙은 공기 속,
말 한마디에도 금이 갈게 분명한 얼음판 위
남은 3명의 수업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내가 잘못한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라는 물음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내 직업은 트레이너다.
트레이너는 당연히 회원의 몸을 변화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사람 아닌가?
온갖 응석 다 받아줘도 정작 바뀐 게 없으면 "PT 괜히 받았네!" 하고 떠날 거잖아.
근데 왜 자꾸 '저는 쌤이 아니에요.' 이 말만 맴도는 거냐고.
군대 입대 전, 신체검사 결과지에 찍힌 내 모습은 키 176cm 몸무게 59kg.
얇디얇은 팔뚝에 한 여름에도 긴팔만 입던 남자.
그게 싫어서 운동했고, 근데 변하질 않으니 포기도 몇십 번.
그러다 트레이너 해야 하니까 미친 듯이 운동했고,
그제야 반팔을 입어도 별 생각 안 드는 몸.
그런데 말이야, 이 회원님은 도대체 왜 운동을 하려는 걸까?
사실 그렇게 뚱뚱하지도 않은데.. 그냥? 그냥 받기에 PT는 좀 과하지 않나?
분명 다이어트하고 싶다고 하긴 했는데..
아직 회원님 잘 시간 아니니까 조심스럽게 카톡을 보냈다.
"회원님 잘 들어가셨나요? 오늘 수업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것 같아서요. 혹시 어떤 점이 불편했을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쌤이 열심히 하시는 건 알겠는데 사실 전 운동의 큰 목적이 없어요. 그냥 집에서 뒹구는 것보다는 운동하는 게 나으니까 가는 건데 요즘은 제가 못하는 거지만 스트레스도 받고 운동이 재미없어요."
그 답장을 받는 순간, 유치하게도 머리에 충격이 밀려왔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생각 많이 해보고 다음 수업 준비할게요. 푹 쉬세요."
운동이 재미없다..
그 어떤 말보다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차라리, '너는 운동을 못 가르친다.'는 말이 나았겠다.
저 옆에서 수업하는 트레이너는 체대 전공자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고 몸도 나보다 안 좋다.
근데 저 쌤 수업은 항상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회원님들도 운동을 즐기는 게 보인다.
누가 양아치 트레이너일까?
내가 정말 양아치 트레이너일까?
지금도 나의 수업 커리큘럼은 겉보기에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오늘 몸상태 어떠세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던 수업이
"오늘은 별일 없으셨나요?"라는 물음으로 바뀌었을 정도
밤늦게 치킨을 시켜 먹은 회원님께
"하.. 진짜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라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던 내가
"이왕 시킨 김에 맛있게 드시고 다음 수업은 하체."라며 능글맞게 휴대폰만 두드릴 정도
내가 몰랐던 건 운동지식이 아닌, 사람 마음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