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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Oct 16. 2023

케냐 키암부

  '내일 이야기해 줄게요'


  불길한 기운이 넘쳐흐르던 고백의 밤에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내 고백에 대한 대답은 이 밤이 끝이 나야 알 수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한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 한 켠이 암울해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내일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될까, 아니면 매일 보는 사이가 될까?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영영 알 수 없었으므로 서둘러 잠을 청했다.


  새로운 날이 밝았다. 그녀의 SNS에는 내가 고백하며 건넨 꽃이 올라와 있었다. 그린 라이트인 건가? 좋은 예감에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하다 이내 스스로를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니까. 약속장소는 이태원이었다. 점심을 함께 먹고 카페에 가기로 했다. 그녀는 아침부터 뭔가를 꼭 사야 한다며 대학로에 있는 텐바이텐에 들렀다 온다고 했다. 나는 쌀국수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사이공그릴이라는 식당을 알아두었다. 카페는 그녀가 좋아한다던 케냐 키암부라는 곳에 가기로 했다.


  공들여 찾은 식당에서는 괜찮은 후기만큼이나 맛나는 쌀국수가 나왔다.


  "여기 쌀국수 정말 맛있네요"


  쌀국수가 맛있다며 미소 짓는 그녀가 새삼 먹을 때마저 예쁘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카페에 갈 차례였다.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들을 차례. 그녀가 함께 가자던 카페는 경리단길 꼭대기에 있었다. 그 카페에 이름은 '케냐 키암부' 신기하게도 케냐 대사관 건물에 있었다. 역시 커피는 케냐지. 그녀의 탁월한 안목에 속으로 감탄하며 주문을 했고 얼마 후 감미로운 향이 가득한 커피가 나왔다. 어디에 앉을까 둘러보려는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라며 창가로 나를 이끌었다. 커다란 창이 나 있어서 남산의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에요. 정말 좋죠?"


  좋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남산뷰 때문이 아니었다. 감미로운 케냐 커피 때문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곳이기에 그날부로 내 최애 카페가 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이거, 선물이에요."


  원통형 케이스에 담긴 세계지도와 엽서를 건네며 그녀가 말했다. 해녀 캐릭터가 새겨진 귀여운 엽서였다. 찬찬히 엽서의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고 어떻게 절친이 되었는지 기억을 헤아려 보았다고 했다. 제주에서 어느 날부턴가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좋아하는 마음인지 궁금해졌다가 이내 내가 좋아져 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엽서의 마지막 말은 이렇게 장식되어 있었다.


  '좋아해요 : )   나랑 같이 세계여행 갈래요?'


  이토록 사랑스러운 대답이 또 어디 있을까? 세계여행을 같이 가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던 그녀였다.


  반전이 하나 있었다. 엽서가 쓰여진 날짜를 보니 11월 17일이었다. (참고로 내가 고백한 날은 11월 20일) 사실 내 고백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나보다 먼저 내게 고백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고백하며 건네려던 세계지도를 계속 구하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구했던 거였다. 지난밤 그녀의 도주 아닌 도주 행각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오래 엇갈리던 두 마음이 마침내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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