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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Nov 08. 2023

오키로북스의 탄생(2) - 나는 게을렀어


  맞다. 오팀장은 게을렀다.



  아직 오사장이었던 시절 지각을 밥 먹듯 했던 그였다. 보통 회사들의 평균 출근시간을 너그럽게 오전 10시라고 쳐보자. 3시간이나 늦은 오후 1시 오픈이었음에도 오사장은 지각했다. 늘 김경희가 먼저 와서 매장 문을 열고 언제 올지 모르는 오사장을 기다렸다. 


  오사장은 왜 늦었나? 해외직구 사이트를 밤늦게까지 살피다 동틀 무렵에서야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직구라지만 현지 시차에 맞출 필요까진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오팀장은 매일 밤 해외여행을 하듯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눈을 떴을 때는 다시 현실,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아 도망치려 했던 현실 세계로 돌아와 있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한껏 지쳐가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눈길이 가는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바로 '타이탄의 도구들'이었다. 흥미로웠다. 더 이상 나아질 거 같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아주 작은 희망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만 같았으리라. 대단하고 특출 난 재능이 없어도, 평범한 재능 몇 개를 조합한다면 꽤 괜찮은 사업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둠 속에 있던 오사장에게 보일 듯 말듯한 미세한 빛줄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다한들 오사장의 게으름은 여전했다. 여전히 밤을 사랑했고 여전히 맞지 않는 시차 때문에 잦은 지각을 일삼는 그였다. 


  허나 균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첫 책이 빛이었다면 다음은 물이었다. '어쩌면 나도'로부터 발아된 희망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물줄기를 만나고 말았다. 새어 들어오는 따뜻한 빛에 적당한 수분이 더해지자 희망은 꿈틀거리며 움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도'는 그렇게 '그래 나도'로 변해갔다.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 나갔다. 사랑했던 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반면 멀어진 시차에 조금씩 다가갔다. 엉망진창이던 오사장의 삶이 그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먼저는 오사장 스스로가 그걸 알아챘다. 다음은 오사장의 아내와 오직원 김경희가 알아보았다. 단골손님들도 하나둘 변해가는 오사장을 보고 수군거렸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여러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오팀장은 버젓이 살아있었다. 아니 이제야 살아났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행으로 가득 차 보였던 세상이, 그래서 꾸역꾸역 죽지 못해 현실에서 도망치던 그가, 이제는 살고 싶어졌다. 영영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가뒀던 오사장은 그렇게 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정체성이 바뀌자 다시 게을러지는 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주 작은 습관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 갔다. 그렇게 쑥쑥 자라나서는 '성장형 인간'이 되었다. 


  오사장의 변화를 알아챈 최초의 목격자 중 하나였던 김경희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던 옛말이 아주 가끔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오사장이 방치한 오키로북스를 홀로 애써 지켜왔던 김경희의 수고가 허지로 돌아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사장이 변할 수 있었던 데는 묵묵히 오키로북스를 지켜냈던 김경희가 있었다. 


  오키로북스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성장하는 인간들이 할 일이라곤 함께 성장하는 일뿐이었다. 정체한 것만 같던 데서 탈피하자 성장이라는 날개가 돋아났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성장을 파는 서점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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