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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Dec 20. 2023

작은 공간이 전해주는 큰 울림 - 구라수 카페

교토 커피 신(scene)의 새로운 물결이 궁금하다면 여기다. 구라수(Kurasu) 카페로 가보자.

교토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으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가 주는 외적인 이미지는 정적이고 고요해서 한적한 시골 마을을 연상시키다가도 시내 곳곳을 걸으며 느껴지는 세련미와 트렌디함은 생동감 넘치는 대도시를 떠오르게 만들곤 했다. 그 모습은 카페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스마트 커피나 윈디 같은 전통을 잇는 카페가 있는 반면 위켄더스 커피와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이는 카페도 있었다.

카페 '구라수(KURASU)'는 위켄더스 커피와 함께 교토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일본 전통 커피처럼 다크로스팅의 진한 풍미를 뿜어내는 커피를 거부하고 원두 고유의 특징을 살려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한다는 점은 닮았으나 위켄더스 커피는 다소 정적이고 구라수는 좀 더 트렌디하다는 게 달랐다. 교토의 다른 카페와 비교해 보자면 위켄더스 커피는 카페 윈디처럼 커피 본연에 집중하는 데에 방향성을, 구라수는 아라비카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커피 문화를 전파하는데 무게를 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구라수는 싱가포르와 방콕에 글로벌 매장을 두고 있었고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여유롭게 먹고 나서 오후 4시쯤 구라수에 방문했다. 교토역 근처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매장이었다. 가로로 기다랗게 난 통창으로 카페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과 함께 창가에 기대어 서있는 손님들이 저마다의 볼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을 때 든 첫인상은 '트렌디하다'였다.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카페 정면을 마주했을 때도 트렌디한 느낌은 여전했다. 카페 왼쪽에 세워 둔 입간판이 눈에 띄어 가까이 가서 보니 'WE SERVE SPECIALTY COFFEE FROM KYOTO'라고 쓰여 있었다. 구라수의 정체성을 확고히 보여주는 슬로건 같았다. 교토에 뿌리를 두고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라니 커피를 얼른 맛보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같아졌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카페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작은 공간이었다. 그렇다고 작아서 좁게 느껴지거나 답답하진 않았다. 다양한 원두부터 여러 종류의 디저트, 다채로운 굿즈들이 가득했으나 적절한 공간 배치로 여백을 두어 자칫 좁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창가 쪽 벽면에 좁다란 바테이블 두어 사람들의 동선이 방해되지 않게 했고 의자도 공간을 최소로 차지하는 것만 가장 안쪽에 두어 공간 활용을 최대한으로 하고 있었다.

다음은 커피를 맛볼 차례. 맛있어 보이는 싱글 오리진 원두를 골라 필터 커피로 주문했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커피에 마음을 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마침내 커피가 나왔다. 구라수의 귀여운 로고와 슬로건이 심플하게 박힌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가 영롱한 빛을 띠고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무엇 하나 튀지 않고 부드럽고 무난했다.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차를 내려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씩 마실수록 나도 모르게 구라수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커피가 비워질수록 선명해지는 플라스틱 컵에 새겨진 K U R A S U 라는 글자와 슬로건이 내 마음에도 새겨졌다. 작은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짧은 시간 동안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무엇'때문이다라고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구라수에서 느낀 구라수만의 일체감이 전해졌던 거 같다. 아라비카에서 느꼈던 '무엇'과도 비슷해서 어쩌면 구라수도 아라비카처럼 글로벌 커피 브랜드로 성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