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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Dec 15. 2022

끝을 모르는


  화창한 날씨의 어느 날이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경치 좋은 곳에서 물놀이하기로 했다. 맛난 음식을 먹고 하나둘 맑고 투명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비가 한두 방울 내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폭우에 불어난 물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물살에 손쓸 틈 없이 휩쓸려버린 나는 깊은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맑고 투명했던 물은 탁하디탁한 흙탕물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바닥이 보일 리 만무하였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끝을 모르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회사로의 이직은 반짝거리는 미래를 약속해주는 보증수표 같았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도 나도 오래 염원했던 회사에 입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속한 직군은 입사 후 교육 기간이 6~8개월 정도로 긴 편에 속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교육 종료를 2개월 정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중국에서 듣도보도 못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 전파력은 그야말로 파괴적이어서 순식간에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코로나였다. 망할 놈의 코로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회사는 아직 수습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우리부터 휴직 처리했다. 2020년 3월,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계절에 휴직을 맞이했다. 처음엔 여름, 그다음은 연말, 그리고 나선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우리의 복직 말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끝을 모르는 심연 속에 빠져버렸다.


  부정적인 상황에서의 최악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끝을 모르는 경우일 것이리라. 달콤한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던 시절,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맞이하게 된 휴직은 끝을 모르는 채로 와서는 나를 서서히 잠식해버렸다. 끝을 모르는 데서 오는 막연함과 답답함과 불안함과 두려움, 언젠가는 끝날지 모른다는 작은 기대들과 그것이 무너졌을 때 비롯되는 실망과 좌절이 사슬처럼 엮여 나를 옥죄고 있었다. 작은 기대들이 연거푸 실망과 좌절을 가져오자 나는 희망을 품지 않기로 했다. 끝을 모르는 채로 두어야만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연쇄긍정마에 가까운 성향을 가졌기에 기나긴 휴직 기간 내내 낙담에 빠져 지낸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생산적인 일을 하려 애썼고 다양한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했다. 2020년 3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3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휴직 기간 동안 고군분투했던 나날들에 대해 회고하려 한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을 때 미국은 괜찮을 줄 알고 갔다가 내내 숙소에만 있었던 일, 제과기능사와 제빵기능사 자격을 단번에 땄던 일,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해봤던 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던 일,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던 일, 한 달 동안 매일 책 한 권을 읽었던 일, 좋아했던 책방에서 일을 도왔던 일, 오키로북스를 알게 되었던 일 등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었다.


  원치 않던 휴직이었고 끝을 모르는 아득함에 주저할 때도 있었지만, 휴직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들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시간이 될거라 믿는다.


  끝을 모를 뿐이지 끝은 끝끝내 오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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