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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Jan 05. 2023

끝을 모르는 채로 두었더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원형 탈모라니..


  헤어컷을 하러 미용실에 갔다가 원장님으로부터 원형 탈모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연쇄긍정마에게 스트레스라니 가당치도 않는 일이었다.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는 원형 탈모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충격적이었다.


  '나 스트레스 받고 있었나..? 그것도 아주 많이..?'


  인지하지 못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휴직은 2년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잘 지내오고 있었다.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절망에 빠진 순간조차 보이지 않는 희망을 찾아내고야 말았던 터였다. 스트레스가 발 디딜틈 없게 긍정과 긍정과 긍정으로 지내왔었다. 그런줄만 알았다. 원형 탈모 따위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인줄만 알았다.


  아니었다. 부정을 긍정으로 애써 덮는다고 해서 그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스트레스를 살찌우는 일이었다. 긍정이어야만 하는 강박이 스트레스를 보호하는 온실이 되었고 그 보호 아래 스트레스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급기야 나를 집어 삼키키 위해 원형 탈모라는 이름으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잘못되고 있던 걸까..? 좋았다. 분명히 괜찮았다. 원치 않는 휴직이었으나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왔잖은가? 새로이 깨달음을 얻었고 성장하는 기쁨을 느껴왔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커다란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랜 휴직기간으로 비롯된 크고 작은 스트레스의 누적이었을까? 분명 괜찮아야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괜찮아야했는데 괜찮지 않았다. 당혹감이 물밀듯이 밀러왔다. 괜찮은 줄만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내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했다간 정말로 잘못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트레스를 찾아 나섰다. 내가 애써 무시해왔던 그를. 긍정으로 덮어버려서 꽁꽁 숨겨버렸던 스트레스와 숨박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실은 실망이 너무 커서 긍정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얼마 전 회사로부터 복직 간담회를 한다는 공지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데 복직 간담회가 잡힌 것이다. 공지에는 간담회의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너무나도 또렷하게 복직 일정에 대해 알리는 자리라고 했다. 꿈에 그리던 복직이 이제 손에 잡힐듯 코 앞에 다가온 것이다. 간담회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2주 뒤, 일주일 후, 5일, 4일, 3일 카운트다운을 해가며 기대했다. 복직 간담회를 단 이틀 남긴 어느 날이었다. 회사로부터 공지 메일이 왔다. 간담회 취소 메일이. 휴직하는 동안 가장 큰 기대와 희망을 품었던 순간의 연속이었는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복직이 불투명해지는 시간이었다. 확실한 희망이었다가 틀림없는 절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나는야 연쇄긍정마, 그로기 상태에 내몰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단, 더이상 희망을 품지 않기로 결심했다. 희망을 품지 않으면 실망도 절망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끝을 모르는 채로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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