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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Jan 12. 2023

끝끝내 끝은 오고야 말았다.

  위잉~


  문자가 왔다는 진동음이었다.


  'OO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OO 임직원의 마음 건강을 위한 감성코칭 전문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안내드립니다. (중략) ... 휴직자도 신청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받은 문자였다.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오는 상담 안내 문자,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로 귀찮게만 생각했던 바로 그 문자였다. 상담이란 무엇이던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받는 것이 아니던가? 상담이 필요한 순간이었지만 신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청이 곧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데서 오는 거부감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계속 방치해 둘 순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상담을 하기로 결정했다.


  상담은 순조로웠다. 휴직이라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서 지속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 뿐이고 나에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직면하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지 상담을 받으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첫 상담이 끝나고 며칠 뒤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복직이었다. 희망을 내려놓았던 터라 연내 복직은 없을 줄만 알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담당 팀장님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고 나서야 복직을 받아들이게 됐다. 너무 오래 쉬어서인지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복직이라니..


  복직이 정해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행선지는 파리였다. 여행의 첫날, 이른 아침이었다. 건물 사이에 가려졌다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에펠탑을 처음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고 감동한 탓인지, 그동안 고생했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는지, 곧 복직이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더없이 고운 순간이었다.


  2년 10개월.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2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지만 휴직을 처음 맞이했을 때 휴직의 끝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지금보다 견디기 수월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이런저런 계획을 잘 세우고 인생에서 다시없을 방학이라 여기며 재밌는 일들을 했을 것도 같다. 허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바로 인생.. 알 수 없는 인생이라 그 굴곡을 온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인생에서 겪는 희로애락에서 배움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보낸 시절에 대해 지금은 그 의미를 헤아려볼 수 없으나 휴직을 언제 했는지 모르게 까마득해질 때쯤엔 아마도 조금은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무사히 휴직을 끝마쳤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끝을 모르는


  심연인 줄도 모르고


  희망을 품었다가 절망을 안았다가


  끝을 모르는 채로 두었더니


  끝끝내 끝은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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