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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Jan 19. 2023

중력을 무시한 마음을 안고

 

  눈물이 핑 -


  여행의 첫날, 이른 아침이었다.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건물 사이에 가려졌다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에펠탑을 처음 본 순간, 눈물이 핑 - 돌았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고 감동한 탓인지, 그동안 고생했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는지, 곧 복직이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더없이 고운 순간이었다.


  끝을 모르는 심연과도 같았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휴직은 무기징역과 다름없어서 행여나 가석방처럼 복직이 찾아올까 모범적인 휴직자가 되기 위해 애썼다. 애쓴다고 휴직이 끝난다면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 같았으리라. 희망을 품다가 절망을 안다가 더는 희망을 품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때, 영화처럼 휴직이 종말을 맞이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친구 코로나와 함께 맞이했던 휴직은 3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그 끝을 맺었다.


  복직이 정해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행선지는 파리였다. 파리로 가기로 한 이유는 꽤나 단순했다. 유럽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가장 항공권이 저렴한 곳이 바로 파리였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파리에 가기로 정한 뒤에도 고민이 많았다. 가장 큰 고민은 돈이었다. 오랜 휴직으로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끝, 끝을 생각하니 생각이 단순해졌다. 복직을 하면 이런 여행은 끝장이었다. 2주 남짓한 기간의 휴가를 보내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여행의 첫날이 되기 불과 4일 전이었다.


  다음은 숙소를 구할 차례였다. 호텔은 사치였다. 호스텔은 식비가 걱정이었다. 결론은 에어비앤비였다. 숙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숙소를 구해야 여행비를 그나마 아낄 수 있었다. 내 여정에 맞는 기간과 와이파이가 되고 주방 사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설정하여 검색해보니 약 1,000개의 숙소가 나왔다. 최적의 숙소를 고르고 싶어 처음부터 끝까지 징그럽게 다 훑어보았다. 저렴한 숙소를 하자니 파리 시내와 너무 멀었다. 인근에 지하철역이 하나 있거나 버스 정거장이 하나 있거나였다. 교통 파업으로 악명을 떨치는 파리에서 그런 곳을 숙소로 정하는 건 큰 모험이었다. 파리 시내 중심가는 너무 비쌌다. 고개를 돌리면 에펠탑이 보이고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센 강이 한눈에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완벽한 파리지앵이 되기엔 안성맞춤이었지만 여행이 끝나면 파산지경이 되기에 알맞춤이었다. 고르고 고르다 보니 한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파리 시내 외곽에 있지만 교통편이 훌륭한 곳이었다. 여러 개의 노선이 지나가는 지하철역이 10분 이내에 있었고 가장 가까운 역은 불과 2분 거리였다. 사진으로 보이는 숙소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후기 신봉자에게 단 4개에 불과한 후기가 마음에 걸렸지만 모험을 걸어볼 만했다. 이제 숙소까지 오케이.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는 일만 남았다. 물론 파리에서의 일정은 미정인 채로 남았다. 일정까지 챙기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다.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파리로 향하는 14시간의 긴 비행시간이 최후의 보루. 파리 숙소에서 먹을 간편식과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이제 파리로 출발할 일만 남았다.


  아직 비행기를 타기 전인데도 마음은 날개도 없이 중력을 무시하고 이미 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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