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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Jan 29. 2023

나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사랑이고 크로아상이였다, 파리는


L’amour, les baquettes, Paris - Stella Jang  https://youtu.be/CnL56e3ElwI ​(클릭하면 아름다운 불어 노래를 들으실 수 있어요!)


  믿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나는 제과 기능사와 제빵 기능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해당 업계와 전혀 상관없는 직군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파리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지인 중 하나가 크로아상 원데이 클래스를 추천했다. 크로아상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크로아상을 배울 수 있다니 흥미로웠다. 프랑스인 선생님이 영어로 수업하는 클래스였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모두 다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눈치껏 코치껏 따라 한다면 어떻게든 되지 싶었다. 그렇게 크로아상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기로 했다.


  파리 여행의 중반으로 향하던 어느 날, 크로아상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프랑스인 선생님이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총 4명의 수강생이 참여했는데 수강생들의 출신들이 다양해서 재밌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온 할머니와 브라질에서 온 사람과 쿠웨이트에서 온 사람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프랑스 사람이었다. 서로 초면이라 어색한 기운이 잠시 흘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크로아상을 만들기를 시작하자 모두 다 한마음이 되어 갔다.


  세상에서 제일 맛나는 크로아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선 새하얗고 곱디고운 밀가루가 존재한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미국산이나 호주산 따위가 아니다. 비옥한 프랑스에서 자란 밀에서 얻은 것이어야만 한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드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란 젖소가 있다. 그 친구가 자비롭게 내어준 고소하고 맛나는 우유와 그 우유에서 비롯된 아주 진하고 풍미 가득한 프랑스산 버터가 고운 밀가루 옆에 이웃한다. 약간의 달곰한 꿀과 짭짤한 소금 그리고 발효를 담당하는 이스트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목표는 한데 모여 완벽한 하모니로 바삭한 식감과 촉촉한 속내를 동시에 뽐내며 고혹적인 자태로 당신을 유혹하는 것.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 이제 모든 재료를 고루 섞어 반죽을 시작한다. 각자의 개성을 뾰족하게 뽐내고 있던 재료들은 이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하나의 반죽이 되었다.


   조화롭게 하나가 된 반죽으로 다시 버터와 함께 포개어 접고 또 접고 나면 겹겹의 층층의 크로아상의 기초공사가 마무리된 셈이다. 이제는 성형할 차례. 직사각형으로 얇게 편 반죽을 대각선으로 잘라 길쭉한 삼각형으로 만든다. 삼각형 반죽의 넓은 면부터 뾰족한 꼭짓점까지 돌돌돌 말아주면 작고 앙증맞은 크로아상 생지가 탄생한다. 이 생지를 발효시킨 뒤 예열한 오븐에 구워낸다. 갓 구워 뜨끈뜨끈한 크로아상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프랑스산 밀가루와 버터를 넣고 직접 만든 크로아상을 말이다. 한 입을 베어 물면 기쁨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고 또 한 입을 베어 물면 행복한 꿈을 꾸게 되고 한 입 더 먹는 순간 천국을 맛보게 되고 만다.  다시 한번 먹으려는 순간 이미 크로아상은 사라진 지 오래라 자기 손을 깨물게 된다.


  나에게 파리는 크로아상이었다. 뾰족하게 철 구조물로 세워진 에펠탑과 지어진 지 수백 년이 지난 성당, 아름다운 양식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 옆에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건물이 한데 어우러져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이 사는 곳임에도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하며 서로 배려하고 사랑했다. 누가 보아도 너무나 동양인인 나를 보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미소 지으며 불어로 말을 건넨다는 건 아마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자신의 피부색과 다르다고 타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다양한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크로아상이였다.


  사랑이었다, 나의 아름다운 도시 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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