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의 독특한 취향이 담긴 부티크 호텔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단연코 숙소 검색이다. 아니,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도 여러 숙소들을 경험하는 것이 나의 최애 액티비티(!)라고 말할 수 있다. 한 달씩 여행을 다니면서 진득하게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는 매일 숙소를 바꾸는 것이 내 여행 스타일이 되었다. 여행지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도시의 유니크한 숙소를 리서치하는 것이었다. 일상을 보내는 집과는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의 숙소들을 검색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때론 이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우연히 너무 마음에 드는 숙소를 발견하면, 그곳을 가보고 싶어 여행을 떠나기도 하니까.
내가 방콕을 다시 찾게 된 것도 머스탱 네로 Mustang Nero 호텔을 찾기 위해서였다. 잡지를 보다 정글과 같은 이미지 하나가 눈길을 끌었는데, 방콕의 한 스타일리스트가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오픈한 호텔이라고 했다. 박제된 동물들과 키 큰 야자나무들이 건물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전생이 있다면 열대 우림 속 한 부족의 추장(!)이었을 거라고 애인이 종종 이야기할 정도로 나는 열대의 나무들, 호랑이나 표범 같은 동물들에게 마음을 뺏긴다. 속상하게 식물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큰 나무를 계속 집에 들이고, 내가 지내는 방이라도 정글처럼 꾸미고 싶어 식물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호텔은 정말 정글 그 자체였다!
아쉽게도 방콕행 비행기를 먼저 예약하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텔을 예약하려 했더니 이미 두 달 동안의 예약이 다 차 있었다. 머스탱 네로가 이렇게 인기 있는 숙소일 줄이야. 좀 더 검색을 했더니 열대의 나무들과 박제된 동물 등 약간은 비슷한 숙소를 발견해 일단 거기라도 예약을 완료했다. 촉박하게 여행을 떠나면서 결국 머스탱 네로에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이 호텔의 분위기가 너무 궁금한 나는 연락을 하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구글맵을 보니 예전 방문한 적이 있는 Hof Art Space 근처다. 프라 카농 역에 내려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동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식물들로 무성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오래된 상가 건물을 개조했다고 잡지에서 본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스탭 둘이서 청소가 한창이다. 양해를 구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로비는 생각보다 넓지 않지만 통유리로 안과 밖의 시선이 트여있다 보니 좁다는 느낌은 없다. 그래도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머스탱 네로 호텔은 맥시멀리즘의 교본이라도 되는 듯 비워둔 구석 없이 갖가지 소품들로 빼곡히 차 있다.
들어오면 가장 먼저 우러러 올려보게 되는 기린의 박제는 아프리카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책상 위에는 해부학 실험실처럼 동물들의 뼈, 뿔 등이 놓여 있고, 각종 새들과 오리, 여우 등의 박제 사이를 살아있는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기묘한 분위기다. 생과 사,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태국의 더운 날씨에 다 녹아내린 것 같다.
호텔 룸 내부는 게스트들이 다 사용 중이라 볼 수 없었지만, 정형화된 호텔 인테리어를 벗어나 오너의 취향이 가득 담긴 로비를 탐방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리뷰를 보니 한국 사람들도 정말 많이 다녀갔고, 오래된 건물이라 수압이 약하다는 불만이 더러 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음에 꼭 지내보고 싶은 숙소다. 태국, 특히 방콕은 다니다 보면 센스 있는 인테리어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동남아시아 나라들 중 열대의 식물들과 빈티지한 앤틱 가구들을 가장 적절히 믹스해 멋진 공간들을 만드는 것 같다. 머스탱 네로 호텔을 다녀간 것도 언젠가 만들 호텔을 위한 좋은 공부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