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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Nov 06. 2018

도시에서 바다로

바닷가 라이프를 위한 방황의 시작

창원에서 태어나 서태지와 아이들 사생팬으로 뜨거운 유년기를 보낸 나는 언제나 서울에 가고 싶었다. 

'내가 서울에 산다면 저 콘서트를 보러 갈 수 있을 텐데, 연희동 집 앞에서 오빠를 기다려 볼 수 있을 텐데...' 

내 처지를 한탄하며 방학에나 돌아다닐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꼼꼼히 살피곤 했다. 다이어리에 서울의 가보고 싶은 장소들이 실린 잡지를 오려 붙여두고, 고딩 시절 홍대앞 Drug을 다녀온 무용담을 반 친구들에게 소상히 전하기도 했다. 드디어 대학 진학으로 인서울에 성공한 나는 새내기 첫 학기부터 강남역 나이트클럽과 홍대앞 클럽들에서 흥을 불살랐고, 친구들과 해장국을 먹고 새벽 지하철을 타는 첫차 클럽 전우애를 나눴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가 좋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이 생기는 빠른 리듬에 자극을 받았다. 학교 공부보다는 페스티벌 자원봉사, 인턴 마케터로 재미난 곳들을 부지런히 누비며 도시의 일원이 된 듯했다.


성공한 덕후를 꿈꾸며 방송 PD가 됐고, 이어 마케터로 일하면서 24시간 돌아가는 도시의 리듬을 따라 잠을 미룬 날들이 많았다. 발 빠르게 취재하고, 이슈가 될 콘텐츠를 만들고, 밤낮없이 수많은 관계자들과 합을 맞추며 나는 날카로워지고 또 능글능글해졌다. 많이 배웠고 너무 즐거웠지만 어느 순간 내 영혼이 시들어버린 식물처럼 바싹 말라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인지 그때 너무 간절히 바라고, 또 나를 버틸 수 있게 했던 장면은 눈부신 태양 아래 바다였다. 충동적으로 스페인행 티켓을 끊고, 퇴사 후 바르셀로나에서 꿈에도 그렸던 바다를 눈앞에 뒀다. 아, 말라 비틀어진 식물이 물을 머금으면 이런 기분일까. 지내는 동안 지중해를 찬양하며 하루 종일 바다에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해안을 따라 여행을 다녔다.



여행에서 돌아와 서울에서의 삶은 계속됐고, 마음의 고향인 홍대 곳곳의 바와 카페를 안식처 삼았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서핑 때문에 바다 앓이가 더 본격화되고 말았다. 수영을 못해서 발목 정도 담그거나 바라만 보던 짝사랑에서 좀 더 찐한 썸을 타게 됐달까. 바다, 그것도 파도가 치는 바다는 여행의 우선순위가 됐다. 휴가는 무조건 발리를 가야 할 것 같았고, 어디든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차트나 캠으로 바다의 상황을 체크하고, 여차하면 주말은 강원도에서 보내는 경우가 늘었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저 멀리 바다가 한 조각 보이면 마음이 놓였다. 서울에서 어떤 한 주를 보냈든 바다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나면 모든 스트레스와 생각들이 사라졌다.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하면 과장일까? 


발리 스미냑 해변의 선셋


이 바다 옆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올해 초, 긴 여행을 끝내며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치앙마이는 느린 속도와 예술적인 정취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바다가 없다는 게 왠지 허전했다. 발리 사누르 바닷가에서 일을 끝내고 하나 둘 모이는 주민들을 보며 바다로 퇴근할 수 있는 삶이 부러웠다. 각자의 하루는 달랐겠지만 석양이 지는 바다를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사치 아닐까. 바빠야지만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어딘지 급하고 화난 도시에서 벗어나 바다의 리듬에 싱크를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 사누르의 동네 바닷가


이 생각을 실제로 옮겨보고 싶어서 요즘 부지런히 바다 동네들을 탐색하며 다닌다. 발리에 가서 좀 지내보고픈 맘이 커서 이번엔 집도 둘러보고 다녔는데, 지진 소식이 끊이질 않아 맘을 접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정말 속수무책이다. 일단 안전한 우리나라의 바닷가 마을로 눈을 눌렸다. 양양으로 서핑하러 다닐 때 진작 눈도장을 좀 찍어둘 것을... 뒤늦게 강릉으로 이주한 친구 커플의 말에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해 고성부터 강릉까지 동네 분위기를 기웃대며 살피고 있다. 로컬들이 찾는 숨겨진 바다의 모습은 어떤지,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들이 있는지, 이주 커뮤니티라거나 코드가 잘 통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있는지, 영화 보고 장 볼 곳은 있는지, 갑자기 베트남 쌀국수나 타이 음식이 먹고 싶으면 갈 곳이 있는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따져본다. 여기저기 다니며 이야기들을 많이 모았지만, 또 살 집을 찾는 건 다른 국면이다. 


저런 조건들에 맞는 바닷가 동네의 작은 집을 곧 기적처럼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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