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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14. 2018

호텔 데 아티스트 핑 실루엣, 치앙마이

갈수록 자연이 너무 좋아진다. 살면서 아직 벗어나 본 적 없는 아파트에서 계속해서 식물들을 들이는 것도 인공적인 공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러운 것을 입히고 싶어서 일 거다. 최근 건축가들의 집 짓기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집을 좁게 짓고 마당을 최대한 넓게 쓰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됐다. 집과 바깥이 이어지는 공간, 실내에 뜰의 한 부분을 살려낸 중정 역시 계절의 빛과 공기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장치다.  


치앙마이에서 너무 좋아하게 된 곳, 호텔 데 아티스트 핑 실루엣 Hotel des Aritsts Ping Silhouette 도 호텔 룸과 버드나무 정원의 경계를 아름답게 허물었다. 1층에 위치한 Willow Room은 버드나무가 줄지어 선 정원을 향해 프라이빗한 작은 공간을 마련해뒀다. 나무 문을 열면 뚫린 테라스가 먼저 나오고 객실이 있어 꼭 프라이빗 빌라를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테라스에는 카우치처럼 앉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해둬서 정원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이곳에 기대어 버드나무가 흔들리는 걸 멍하게 지켜보고, 책도 읽고, 밤엔 술도 마시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스테이케이션, 호캉스의 트렌드가 보여주듯 사람들은 쉴 곳이 필요하다. 업무 공간에서 벗어나도 해야 할 것들이 눈에 밟히는 집은 온전히 쉴 곳이 아니다. 여행에서도 시간을 쪼개 여러 곳을 바삐 섭렵해야 하는 일정은 오히려 더 분주하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오직 쉼을 위한 호텔을 찾는다. 나 역시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이 도시를 파악하고 싶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 데 아티스트를 찾았다. 


호텔은 입구부터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했다. 테라스가 활짝 열린 카페 옆, 볼드한 블루 컬러의 로비에선 중국풍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풍스러운 찻잔 세트와 곤약 젤리를 웰컴 드링크로 내왔다. 로비 뒤편, 작은 수로가 있는 중정을 지나면 정원이 펼쳐지는데 이 버드나무 정원은 객실, 식당과 핑 강까지 맞닿아 있다. 



호텔 데 아티스트 핑 실루엣은 중국을 중심으로 다른 국적의 상인들이 모여 다양한 문화들이 뒤섞였던 인근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Modern Chinoiserie’라는 컨셉을 고안했다. Chinoiserie는 17,18세기 유럽 상류사회에서 유행했던 중국적인 기법이나 취향을 일컫는 단어인데 특히 프랑스에서는 로코코와 융합되어 중국풍의 꽃무늬, 풍경을 패턴화 한 가구, 도자기, 직물 등 장식적인 공예품이 많이 등장했다고 한다. 호텔 곳곳에 붉은 등과 조각품, 실내 화기와 도자기, 벽의 그림 등 중국과 태국 북부의 흔적이 야릇하게 남아 있었고, 건축에 쓰인 블랙 프레임과 진회색, 철, 타일, 대리석 등은 현대의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객실도 블랙 & 화이트, 우드 소재의 벽 장식, 도자기 소품과 은은한 조명 등 편히 휴식을 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총 19개의 객실은 1층의 Willow Room, 2층의 Serene Room, 강변의 River Room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의 다른 객실도 궁금해 스태프에게 요청해 살짝 들여다봤는데 검은 꽃이 새겨진(?) 나무 액자와 철제 프레임들이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호텔 데 아티스트 핑 실루엣은 야외로 이어진 테라스와 핑 강과 바로 맞붙은 정원, 수풀 속 수영장 등 자연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기에 너무 좋은 공간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객실에 있는 시간이 적었던 것 같다. 



또 너무 만족스러웠던 건 입구 카페에서부터 정원으로 연결된 레스토랑이었는데 음식의 퀄리티가 매우 뛰어났다. 체크인 후 웰컴 티와 나온 타이완식 토스트부터 대나무 바스켓에 가지런히 담겨 나온 조식, 파스타와 샐러드 등 먹어본 모든 음식들이 맛있었고, 타이 레시피와 이탈리안 등 훌륭한 컴비네이션 메뉴를 가지고 있다. 탁 트인 정원을 바라보며 먹었기에 맛이 배가되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음식의 프레젠테이션도 한몫했다. 특히 소품의 디테일에 계속 감탄을 했는데 치앙마이에서 많이 보이는 라탄을 근사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플레이팅뿐 아니라 식당 곳곳의 수납, 케첩 등 소스들을 담아 둔 테이블 위 바스켓 등이 너무 이뻐서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 곳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 추리는 데 시간이 다 갔다. 



기대했던 2층의 수영장은 마침 아무도 없어서 전세 낸 듯 풀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 안에서 아래 정원의 버드나무들과 한쪽 면을 따라 심어진 나무들이 바람에 살랑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수풀 속 강에서 헤엄치는 기분이다. 열대 리조트들과는 사뭇 다른, 정적인 느낌의 수영장이다. 태닝도 하고 놀다 보니 치앙마이의 해가 핑 강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수면이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걸 한참 바라보며 행복이 조금씩 차오른다. 

이 호텔은 어디에 카메라를 갖다 대도 인생 사진이 나올 만큼 근사한 인테리어를 갖췄지만 한편으론 어디서라도 자연을 만날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더 충만한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http://www.hotelartists.com/pingsil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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