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강사의 노트 _ 첫 번째 페이지
안녕하세요. ‘김태은의 지난주’를 쓰던 김태은입니다.
오랜만입니다. 날짜를 꼽아보니, 2018년 2월 이래 처음 인사드리는 셈이니 근 3년이 넘었네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치고는 좀 긴 시간이었던 듯싶습니다. 여전히 구독을 유지해주고 계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돌아와서 전하는 글들은 이전의 그것과는 달라지기도 또 그대로이기도 할 것입니다. 달라지는 것은 이름과 주제입니다. “Beyond Insight”라는 이름으로 제가 업으로 삼고 있는 기업 강사라는 직업적 성격에 부합하는 주제들을 글감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그대로인 것은 생각과 문장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한 인간을 바꾸기에는 짧았던 모양입니다. ‘김태은의 지난주’를 쓰던 그 김태은이 여전히 생각하고 씁니다. 아마 읽으시던 그 글이 맞을 것입니다.
‘김태은의 지난주’로 여러분을 만나던 날들에는 매주 일요일이라는 시간을 지켰는데, “Beyond Insight”에서는 언제건 찾아뵙겠습니다. 생각이 문장이 되는 순간이면 분량과 무관하게 인사드리겠습니다.
봄입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좋은 때이고, 사실 그것이 그리 새롭지 않았음을 깨닫는 겨울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시작합니다.
인간(人間)이라 하면, 어떤가? 살포시 소리 내 읊어보면 또 어떠한가? ‘인생세간(人生世間)’이 줄어 만들어졌다는 ‘인간’이라는 단어에 우리를 호명하는 역할을 맡기기는 좀 미덥다.¹ 이를테면 ‘한국 인간’ 보다는 ‘한국 사람’ 같은 표현으로 우리를 부르는 편이 훨씬 익숙해진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언중(言衆)은 ‘인간’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회적 혹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명명할 적에 활용하기 때문이겠다.
그러다 보니, 이 ‘인간’ 속에는 쉽게 ‘내’가 생략된다. 겨우 타자들만 집어넣어 이름할 버릇하니, 쉽게 잊는다. 이 단어가 가장 빛나게 호응하는 단어가 ‘존엄’이나 ‘예의’ 또는 ‘이해’라는 사실을 말이다. 강의할 적에도 다를 리 없다. 오히려 더 유념하면 좋을 일이다. 인간이 인간을 직접 대하면서 지식을 전하거나, 활동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그러니까 기업 강의 속의 인간 말이다.
나는 리더십 과정을 능숙하게 이끌어가는 강사님들을 존경한다. ‘어려운 강의’가 갖는 속성 중 하나로 강사인 내가 강의장에 들어섰을 때, 전달할 핵심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리더십 과정은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과는 달리,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게 하고 각자의 조직에 부합하는 나름의 답안을 도출하게 하는 것이 본질이기에, 분명 힘든 강의 일지다. 그런데 이에 더해 리더십, 이른바 조직에서 허리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는 분들을 학습자로 모셨을 때 특히 유념하여 공유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완벽하게 정의하고, 평가할 수 없다.
‘세상에는 알파벳 약어로 된 멋진 성과측정 기법들이 있다. 리더인 나는 직접 경험하여 체득한 업무 역량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소속된 구성원의 업무에 대한 전全 사항을 평가하고 통제할 수 있다’라는 믿음은 어쩌면 리더십 과정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또한 아주 틀리기만 한 주장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직원’ 이전에 ‘인간’이라는 시선으로 구성원을 바라보면 어떨까?
빈번하게 놓치는 사실 하나가 있다. 바로 리더십 과정의 주인공은 리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강의이건 가장 중요한 대상은 늘 ‘고객’이라 하면서, 리더들의 모임에서는 쉽게 대상화되는 구성원들의 이름을 보자. 특정 세대, 직함, 심지어는 문제 대상인 양 부르게 되는 그 이름들… 그렇게 부르는 입술 위의 눈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누구의 시선과 평형을 맞추고 있을까? 성과측정 도구라는 것만 해도 그것은 대체로 리더의 시선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아낀다는 구성원의 이름은 쉽게 수치로 대체된다. 자본의 논리로만 인간을 평가하던 오래된 습관을 단 한 번도 반성하지 않은 채, 오늘도 명랑해서 좋았다는 리더들의 담소는 어떤 함의를 낳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비대면 교육의 비중이 증대했다. 한번은 고객사의 교육 담당자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다.
“대면 과정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학습자 모두 과정 내내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두게 하시죠. 그래야 강사님 농담에 다 같이 웃음소리도 서로 들리게 할 수 있고…”
일견 그럴듯한 제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ZOOM 이건 Webex Meetings건 입장하게 되면 무엇을 먼저 살피나? 앞머리, 눈곱, 입 주변, 배경…… 거기에 마이크까지 켜게 된다면, 아이나 반려동물이 내는 소리, 벨 소리, 기침 소리…… 이 모든 것들이 내 마이크로 들어가 다른 학습자 동료나 강사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학습자의 마음이 되어 보자. 웬만큼 다 통제했다고 여겼는데, 아차! 하필 가족 중 한 명이 가까운 화장실을 썼는지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학습자는 과정에 몰입할 수 있을까?
교육 담당자는 오랜 대면 과정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강의장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에 본 과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편리한 습관 말이다. 그 습관을 별다른 고민 없이, 비대면 과정에 참가하는 인간, 곧 학습자에 대한 이해 없이 그대로 비대면 과정으로 가져온다면, 위와 같은 아찔한 상황은 피할 길 없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단 한 순간도 편할 수 없었던 그 학습자의 모습을 한 번쯤 떠올렸으면 하고 바라본다.
“가장 어려운 과정이 신입사원 과정이다”라고 외치면 얼마나 많은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자신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이상한가? 무엇이건 잘하고 싶은 마음과 무엇 하나 못하면 안 되겠다는 압박감을 동시에 지닌 신입사원들은 가장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과정에 임한다. 반응도 좋다. 신입사원 과정에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강사를 투입하는 일종의 관행도 이 예정된 뜨거운 호응에 기대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신입사원 과정에 함께하는 그들이 되어 생각해 보자. 공교육 시스템에서 이미 교육이라는 교육을 질릴 만치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직장에서도 다시 교육을 받으라고 하는 과정이다. 물론 위에 열거한 상황처럼 이들은 언제나 가장 열광적인 관객이다. 그런데 이처럼 얼핏 가장 쉬운 과정일 듯한 본 과정이 가장 어려운 이유는 바로 본 과정이 그들의 첫 시작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성인 교육에 임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도 여전히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그것이 나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최초의 확신을 심어주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원은 이후에 교육이 있다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태도로 임할까?
언젠가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과정에서 학습자의 태도가 아쉬웠다면, 그들의 신입사원 과정이 어떠했는지, 그들이 신입사원 과정에서 참여했을 때의 경험을 물어봐도 좋을 일이다.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battle you know nothing about. Be kind. Always.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투에서 각자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세요.
본적 있지 않나? 웹서핑 중에 옛날 사람의 근엄한 얼굴 옆에 그럴듯한 글귀를 적어 명언이라고 통용되는 이미지 말이다. 이런 소비가 흔하게 누적되자, 도무지 그 출처를 알 길이 없어졌다. 위의 저 글귀도 철학자 플라톤으로부터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까지 발화의 주인공이라고는 하니, 이쯤이면 메신저는 놓고 메시지만 봐야겠다.
가장 중심에 두는 말이다. 기업 강사를 하면서 고객인 학습자를 마주할 적에 항상 단단하게 고정한 채 태도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말이다. 기업 교육의 시선이 이미 ‘잘하는’ 혹은 ‘성공한’ 사람들을 ‘올바른’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탓이다. 그 시선 밖의 사람들은 쉽게 무능력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강의는 혹은교육은 아직 완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도구이지, 이들을 나무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지고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먼저 발견하게 하고, 학습자의 속도에 맞춰서 과정을 진행하는 일은 이 업을 하는 내내 나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인간(人間)은 사람의 사이를 이른다. 따라서 인간 간에는 경계가 있고, 그 틈을 흐르는 모든 인생이 세상이 된다. 이렇게까지 거창한 담론이 아니더라도, 다 큰 어른을 학습자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일은 이미 견고해진 세상들의 충돌임을 되새기면 좋겠다. 강사는 이 충돌로 서로가 다치지 않고, 오히려 각자가 성장하는 에너지로 바꿔주는 사람임을 상기하면 좋겠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 일을 잘하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일은 단연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확신한다. ‘학습자에 대한 이해’로 바꾸어 불러도 아무 문제 없겠다. 그저 서로를 보듬으면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증명을 나누는 것으로 더없이 충분할 것이다.
참고
1 인간의 의미
- https://www.korean.go.kr/nkview/nknews/200006/23_1.HTM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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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olpan.com/index.php?mid=word&document_srl=58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