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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마이크를 들고 마운드에 오른다

기업 강사의 노트 _ 두 번째 페이지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심판은 “플레이볼!”을 외친다. 하지만 진짜 경기의 시작은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이루어진다. 그렇게 초구를 던진다.


“안녕하세요. 오늘 보고서 작성 과정을 진행할 강사 김태은입니다.”


힘찬 박수는 마치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만 같다. 이렇게 하루 전체를 담당하는 교육 과정이 시작된다. 선발 투수인 나는 이 경기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기업 강사인 나는 역시 이 과정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등판할 때마다 상대 타자들의 특성은 매우 다르다. 어떤 날은 스피커와 빔 프로젝터라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하고, 무관심, 무열정이라는 이름의 타자들이 유독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안정적으로 피칭을 이어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선발이 익숙해질 즈음, 가끔 다른 역할을 부여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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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에서 몸을 풀던 나는 계층별 과정의 중간 단계, 그러니까 약 2~3이닝 정도를 책임질 중간 계투 요원으로도 활약한다. 이전에 다른 강사님들이 잘 만들어 놓은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앞서가는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 다행히 참여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준비된 학습자분들이 마치 노련한 포수처럼 내게 사인을 보낸다. 나는 그 사인에 맞게끔 던지고 진행하며 교류한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마무리 투수에게 인계한다. 휴- 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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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마무리 투수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과정 전체를 안정적으로 끝마치는 역할이다. 전체 과정의 의미를 복기하면서도, 학습자분들이 과정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게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쉽지 않다. 학습자분들의 집중도는 많이 떨어져 있고, 이미 마음은 집에 가 있기도 하다. 그런 강타자들을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어야 한다. 마무리 투수가 왜 가장 강한 공을 뿌리는 투수로 낙점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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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투수와 닮은 강사의 시간을 돌아보니, 강사로 처음 데뷔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아직 막 2군에서 올라온 터라, 오프너로 투입되곤 했다. 야구 경기에 있어 오프너란, 경기 초반 전략적으로 잠깐 투입되는 투수를 말한다. 교육의 전체 과정에서 오프너는 과정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출발점, 곧 전 과정의 아이스브레이킹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준비해 둔 재미난 퀴즈와 활동들이 끝나자, 역할을 다한 강사의 모습 뒤로 관중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퍼져갔다. 더그아웃에 앉아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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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주로 선발 투수로 출격한다. 포수를 비롯하여 수비를 담당하는 야수들이 교육 담당자, 교육 운영자라는 이름으로 나와 함께한다. 그 누구보다도 학습자라는 존재는 내가 하기에 따라 나를 돕는 우리 편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강타자가 되어 나의 공을 쳐 넘겨버릴 상대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방어율’처럼 강사를 평가하는 수치인 ‘만족도’와 ‘이닝 수’처럼 기록되는 ‘강의 시간’이라는 숫자들은 투수와 강사를 부담스럽게도 졸졸 쫓아다닌다. 그러면서도 탈삼진만큼 짜릿한, 학습자분들이 보여 주시는 유쾌한 반응의 순간들에 힘을 얻고는 또 다음 공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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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업 강사로서 숱하게 마운드에 올라 보니, 늘 승리할 수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19승 100패.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통산 기록이다. 외계인이라 불릴 만큼 대단했던 그 최고의 투수도 무려 백 번이나 졌다. 혹시라도 많은 피안타와 볼넷을 허용한 그 경기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를 기업 강사님께 작은 위로를 전한다. “다음 경기를 준비합시다! 다음 강의를 준비합시다!”


여기 글러브와 공이 있다. 마이크와 레이저 포인터가 있다. 다시 던질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강사 김태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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