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은 복리의 마법을 형상화한 개념이다. 습기를 머금은 눈을 뭉쳐 길게 뻗은 언덕에서 굴리면 처음에는 작은 눈뭉치가 몸집을 불리며 속도를 더하면서 거대한 눈덩이가 된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복리의 마법을 실현하려면 최대한 이른 나이에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워런 버핏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어려서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고 애썼다. 여섯 살 때부터 껌을 팔아 돈을 벌고 열한 살 때 주식투자를 시작하고 청소년기 신문 배달로 종잣돈을 모아 주식투자로 불려 나갔다.
<스노볼>은 워런 버핏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모건 스탠리 이사였던 애널리스트 앨리스 슈뢰더가 5년간 집필하여 완성한 역작이다. 전기 작업이 원래 방대한 인터뷰와 자료 수집을 전제로 하는데, 시대의 중심을 관통해 온 버핏의 삶을 출생 전부터 80여 년간 추적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일반 경제경영서는 한 페이지에 23행 정도 넣는데 이 책은 26행을 넣어 훨씬 빽빽하게 작업했는데도 1, 2권을 합쳐 2000페이지에 달했다. 슈뢰더는 특정일의 날씨를 표현하기 위해 수십 년 전의 일기예보 데이터를 찾아내어 묘사하고 어린 시절 학교 동창들도 샅샅이 인터뷰하는 등 역사학자라고 할 만한 꼼꼼함과 엄정함을 보여준다.
워런 버핏은 애널리스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버크셔 해서웨이에 대해 쓴 보고서는 워런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버핏은 ‘발자크는 거대한 부 뒤에 범죄가 있다고 했지만,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렇지 않다’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공개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무제한적인 인터뷰를 해주는 한편, 가족과 친구들, 사업상의 파트너들도 전폭적으로 그녀를 지원하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다를 때에는 ‘아첨이 덜한 쪽으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그의 사생활도 아주 객관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그로 인해 버핏과 슈뢰더의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현대 자본주의가 개막되면서 대기업의 창업주가 최고 부자로 등극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버핏은 창업과 경영을 통해서가 아니라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고도화된 금융 자본주의의 일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의 부를 빨아들여 급성장한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부를 일구는 데 가장 큰 기회가 되었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난소 로또’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그가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높이자고 주장하거나 기부에 앞장서는 이유이다.
워런 버핏은 공부로 부자가 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투자와 관련된 모든 종류의 정보를 구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섭렵해 왔다. <스노볼>에는 투자 대상 기업의 온갖 회계 자료는 물론 해당 업계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찾아 모조리 습득하는 그의 왕성한 지식욕이 잘 드러나 있다. 일 중독자인 버핏은 늘 숫자로 가득한 보고서들을 읽고 투자에 영향을 끼치는 갖가지 이슈들에 대한 정보를 탐색한다. ‘돈 되는 지식’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욕이 그가 부자가 된 가장 큰 동력이었던 것 같다.
이처럼 불타는 학습 욕구를 장착한 워런 버핏은 무엇보다도 정직(그리고 아마도 논리)을 철칙으로 삼으며 자신의 투자 실수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한다. 그는 부 자체에 대한 욕망, 혹은 부를 누리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싶은 욕망보다는 부를 차지하기 위한 게임에서 승리하고 싶은 플레이어의 욕망을 더 지닌 것 같다. 그래서 늘 자신의 실수를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할 전략을 모색한다. 또 자신의 원칙과 전략을 자신의 동업자들(그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은 물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인정받길 바란다. 그는 더 큰 부를 누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의 게임에 임하는 플레이어로 보인다.
워런 버핏의 ‘난소 로또’는 미국 주식시장의 최고 전성기에 태어나고 자란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할아버지는 식료품 판매로 성공한 자영업자였고, 아버지는 주식 중개업을 하다가 공화당 하원의원이 되었다. 부유한 환경에서 양육되었다는 것은 교육이나 기회 면에서 명백한 이점인데 사실 더 큰 이점은 물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와 경험 세계에 있었다. 아버지가 주식 중개인이고 할아버지는 버핏이 열한 살 무렵부터 그를 증권사 객장에 데리고 다녔으니 그는 주식 투자에 일찍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식탁에서 정치, 경제 이슈에 대해 열변을 토하곤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워런 버핏은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와 부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익숙했을 것이다.
구두쇠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혹독하게 아르바이트를 시키고는 다른 사람보다 더 적은 급료를 지불했다. 그래서 버핏은 고된 노동으로 힘들게 쥐꼬리만 한 돈을 벌기보다는 부와 여유를 즐기는 증권사 고위 임원처럼 투자를 통해 큰 부를 축적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이미 자본주의에서 부를 축적하는 원리를 경험을 통해 체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정은 애정이 넘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어머니에게서 양육된 버핏의 어머니는 워런과 그의 누나를 학대했고, 이모 한 명과 조카 한 명은 자살했다. 워런 버핏은 평생의 반려자 수지와 결혼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그러나 수지는 배우자라기보다는 버핏을 일일이 챙겨주어야 하는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야 했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녀는 결국 버핏과 따로 사는 길을 택했다.
원래 수지는 버핏과 결혼하기 전에 유대인 남자친구가 있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 슈뢰더는 다양한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수지가 버핏을 떠나기 전에 예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테니스 코치와도 낭만적인 관계를 이어갔으며 이를 버핏만 모른 채 주변 사람들이 덮어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세간의 화제가 된 것처럼 <스노볼> 출간 이후 버핏과 슈뢰더의 사이가 멀어졌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버핏은 수지가 자신을 떠나기 전에 <워싱턴포스트>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과 가깝게 지내고, 수지가 떠난 후에는 아내의 친구 애스트리드와 동거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버핏 때문에 수지가 떠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슈뢰더는 치밀한 취재를 통해 버핏과 그레이엄은 이성 관계가 아니라 비즈니스와 우정이 결합한 관계이고, 수지는 버핏을 떠나기 전에 이미 다른 남자들을 사귀고 있었으며, 남편을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그가 폐인이 될까 봐 신뢰하는 친구 애스트리드에게 여러 번 부탁해서 집안 살림을 돌보게 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수지는 애스트리드가 버핏과 동거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수지가 죽을 때까지 수십 년간 그들은 이혼하지 않았다. 심지어 버핏은 그런 생활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들의 세 자식 모두 이혼과 재혼을 경험하는 동안 수지는 버핏의 공식적인 아내로, 애스트리드는 그와 생활을 함께 하는 아내로 지냈다. 수지는 버핏의 아내로서 모든 후광을 누리는 한편 자유를 한껏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애스트리드는 수지가 죽은 후 2년 뒤 버핏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아마도 슈뢰더는 수지가 죽었기 때문에 이 모든 진실을 책에 적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수지는 죽기 전에 애인에게 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을 유언장에 은밀하게 추가했다고 한다. 수지의 죽음 후 그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버핏은 가슴이 두 번 찢어졌을 것이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은 진작 알았겠지만, 그 남자를 위해 유산까지 남긴다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평생 절친으로 지낸 캐서린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의 관계는 버핏의 삶을 이끄는 동기들을 잘 보여준다. 처음 그는 신문사업에 대한 열정에서 그레이엄에게 접근했다. 경영권을 위협받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그레이엄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워싱턴포스트>의 주식을 단 한 주도 사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서야 버핏을 사업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최상류층 출신이지만 반평생 어머니와 남편의 정서적 학대를 받고 살았다. 그녀의 남편은 장인의 사업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아내를 돼지라고 무시하며 대놓고 바람을 피우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권총으로 자살했다.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더 포스트>는 남편이 죽은 후 하루아침에 전업주부에서 신문사 경영자가 된 지 8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자신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불안하고 우아한 캐서린 그레이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회사의 운명을 걸고 ‘펜타곤 문건’ 보도를 과감하게 결정함으로써 <워싱턴포스트>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버핏은 2년 후 워터게이트 사건이 한창일 때 캐서린 그레이엄을 만난다. 언론의 영향력과 사업적 가능성에 매료되어 있던 버핏은 그녀를 통해 워싱턴 정가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레이엄이 주최하는 파티는 격식을 싫어하는 버핏에게는 무척 불편한 자리였지만, 정치와 사회적 영향력을 중시했기에 늘 그녀의 초대에 응했다. 이미 성공한 투자자로 유명했던 버핏은 그레이엄을 통해 국가를 움직이는 권력의 중심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정치에 야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려 했고 더 나아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했다.
앨리스 슈뢰더는 버핏과 캐서린은 서로 아주 다른 문화에서 성장했으나 어린 시절 학대받은 경험이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상처받기 쉬운 불안정한 그레이엄에게 버핏은 매혹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조종할까 봐 의심하면서도 늘 의지할 사람을 찾았다. 조심조심 다가가 캐서린의 방어막을 해제시킨 버핏은 <워싱턴포스트>의 이사가 되고 그녀와 그녀의 아들 돈 그레이엄의 경제 멘토, 경영 코치가 되었다. 워런 버핏과 캐서린 그레이엄은 <워싱턴포스트>가 <뉴욕타임스>에 필적하는 명성을 얻고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깊은 우정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였다.
슈뢰더는 워런 버핏에게 강한 ‘설교의 충동’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원칙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그의 충동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들에게 보내는 서한들에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 충동은 캐서린 그레이엄과 그의 아들에게 경영과 금융에 대한 지식과 철학을 전수하는 데 그가 그토록 몰입했던 이유를 보여준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설명하는 데 몰입했던 버핏은 세상을 바꾸는 데에도 나서게 된다. 언론의 영향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버핏은 기부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서게 된다. 그가 기부에 앞장서게 된 데에는 인심 좋고 자선 사업에 열심이었던 부인 수지의 영향이 컸다.
각자 현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서로의 명성을 듣고 기회를 엿보다가 자리를 만들어 만나게 된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깊이 매료된 두 남자는 절친이 되어 부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공감한다. 마침내 버핏은 전 재산의 대부분을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정직을 신조로 자신의 투자 원칙을 세상에 공표하며 시장의 냉혹한 평가 속에서 60여 년간 승리를 구가한 워런 버핏은 어떤 마무리를 하게 될까? 이는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워런 버핏에 대한 가장 충실하고 객관적인 저서인 <스노볼>이 현재 절판 상태라는 것이다. 일반 단행본 도서의 10배 분량이지만, 단언컨대 이 책은 내가 편집한 책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