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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Mar 10. 2021

네 명의 완벽주의자

불안과 우울에서 행복과 탁월함의 성취로

이 책은 EBS <질문 있는 특강쇼 - 빅뱅>에서 '꾸물거림'(procrastination) 현상에 대한 심리학 강의를 보고 교수님께 연락하면서 기획하게 되었다. '꾸물거림'은 자기계발서의 영원한 화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바로 실행하지 못하는가, 어떻게 하면 결심을 실행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출간되어 있다.

 

특히 관리자라면 일을 제때 하지 않는 직원들 때문에 난감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상습적으로 프로젝트를 늦게 완수하는 실무자는 어쩔 수 없는 변수 때문에,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제때 하지 못했다고 변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다 보면 일을 제때 하거나 미루는 것은 주로 개인의 습성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초과근무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려면 이러한 개인들의 미루기 습관을 해결해야 한다. 업무 성격에 따라 초과근무의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쉬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는 과도기인 것 같다. 회사에서도 예전처럼 야근을 권장하지 않고, 직원들도 업무량과 성과에 대한 감독이 강화될까 봐 초과근무 수당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상습적으로 일을 미루는 직원이 초과근무를 자주 해서 수당을 많이 받으면, 다른 사람보다 업무량이 적거나 적시에 완수하지 못하는 직원에게 불이익 대신 물질적 보상을 주는 셈이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정말로 초과근무가 필요했는지 철저하게 관리해야 되고 그렇게 간섭하다 보면 회사 분위기가 나빠질 수 있다.

 

나는 사전에 <꾸물거림의 뇌과학>이라는 가제로 기획안을 작성해서 교수님과 만났다. 교수님의 강연에 따르면 계획을 즉각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꾸물거림은 많은 경우 완벽주의에 따른 불안과 초조 때문이다. 꾸물거리고 미루다 보면 우울, 무기력,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꾸물거림, 지연 등은 주로 자기계발서에서 다루는 주제로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존감이나 자기 긍정에 대한 심리서가 꾸준히 출간되어 왔다. 내 기획은 꾸물거림과 지연, 완벽주의와 우울, 무기력, 자기혐오를 한데 엮어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며 실천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었다. 그동안 이 문제가 자기계발 아니면 심리치유라는 한쪽 측면만 강조한 접근법으로 불충분하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의지와 실행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 및 온갖 다이어트 책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다가, 계획이 틀어지고 자기혐오에 빠지면 심리치유서를 펴드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깊이 이해한 바탕 위에서 삶을 진짜 변화시킬 행동에 나서게 하며 자기효능감을 높여줄 책을 선사하자는 게 기획의도였다.

 

내가 쓴 책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에도 적었듯이, 나는 기획안을 작성해서 저자와 만나지만 기획안은 꺼내놓지 않고 일단 저자의 관심사와 전문 분야를 탐색한다. 저술은 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 일이므로 저자 스스로의 열정과 동기가 중요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기획자가 그럴듯하게 기획안을 작성했더라도 그것이 저자의 열정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그냥 폐기하고 저자의 의도에 맞는 새로운 도서를 즉석에서 기획하는 게 낫다. 



방송을 보고 접촉한 저자들이 대개 그렇듯, 교수님은 이미 여러 출판사와 차기작이 계약되어 있었다. 나는 논의과정에서 '완벽주의'가 다른 것들을 포괄하는 훨씬 더 큰 범주에 속하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의 주된 연구 분야는 완벽주의와 자기가치감이었다. 결국 우리의 논의는 교수님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여 완벽주의에 대한 책을 내자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교수님은 여러 심리 교양서를 출간했지만 심리학 상식들을 모아놓거나 상담 사례들을 제시한 책들로, 그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은 없었다.

 

미팅에서 교수님은 엘리트 학생의 자살에 대한 해외 자료를 보여주시기도 했고, 한 대기업 임원의 자살 후 그 기업의 임원들에게 완벽주의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특강을 의뢰받아 강연하신 경험도 얘기했다. '스스로를 혐오하도록 길러진', 아무리 우수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의 비극을 언급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싶어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완벽주의자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인물들은 디테일에 대한 집착과 탁월함의 추구로 유명하다. 완벽주의가 우울과 불안을 부르기보다 더 높은 성취, 더 만족스러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관리자로서 기획만 하고 편집을 직접 하지 않은 책들이 많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직접 편집하려고 했음에도 편집 기간이 육아휴직 기간과 겹쳐서 편집 작업을 하지는 못했다. 그 점에 대해 교수님께 무척 죄송스럽게 여겼지만, 다행히 잘 이해해 주셨다. 이 책은 잘 진행되고 출간되었지만, 관리자라서 실무를 할 시간이 없어 중도에 포기한 국내 기획물이 여러 종이다. 다른 편집자에게 실무를 맡긴 책들도 여럿 있지만, 편집자의 의지와 역량이 중요한 책인 경우에는 마땅한 실무자가 없어서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국내서보다는 외서 기획에 집중하게 된다. 대체로 외서는 기획자와 편집자가 달라도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관리자와 기획자를 겸한다는 게 무리인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 일해도 기여도를 인정받지 못하니 피해의식만 쌓이게 된다. 사람들은 관리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회사가 잘 돌아갈 때는 관리자를 노는 사람이라고 여기다가 잘 안 돌아갈 때만 관리자를 탓한다. 결정적으로 경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회사에서는 관리자가 아무리 애를 써봤자 소용없다. 기획자와 편집자가 다르면 기획자는 기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라틴어 수업>은 퇴사자가 기획했지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당시 재직했던 몇몇 사람들뿐이고, 아는 사람들조차 이미 퇴사한 직원의 공로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책은 완벽주의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며 각각에게 맞는 처방을 제시한다. 나는 방탄조끼 안전지향형, 강철멘탈 성장지향형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안전한 선택을 하는 데 익숙해진다. 요즘 회사들은 직원들에게 늘 도전하고 신사업을 제안하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회사에 오래 다니지 않는다. 회사에 오래 다니는 사람들은 원래 성격이 안정지향형이거나 아니면 안정성이 자신에게 최우선 과제라서 그런 것이다. 오랫동안 제한된 여건 속에서 일하다 보면 자신의 가능성이 얼마만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늘 내적 기준을 중시했고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탁월함을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경영진과 다른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하곤 했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한 것은 그 일 자체가 정말 중요하다고 여겨서였지, 그 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나중 문제였다.

 

내 나이의 여성들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나 기술 습득을 게을리 해서가 아니라 평생 열심히 살아왔어도 자신이 어떤 일을 잘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다. 일을 하면서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끼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 책은 분야와 문제의식에서 내가 이전에 기획해서 성공을 거두었던 <문제는 무기력이다>와 연장선상에 있다. 다음편에서는 그 책을 기획했던 경험을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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