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모계사회의 꿈
수십 년 전에 읽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나는 다른 모든 분야도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독서를 한 일이 없다. <공산당 선언>이나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들을 읽긴 했지만,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다. 아무튼 인문학, 진화론, 심리학, 경제학, 뇌과학 등이 잡탕으로 뒤범벅이 된 내 지식체계에서 엥겔스의 책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다.
자유연애를 하면 아이의 아버지를 알기 어렵다. 어머니만 확실하니 모계사회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른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이후 여성은 한 남성에게만 종속된다. 일부일처제를 표방하는 사회에서도 유독 여성의 불륜에 대해서만 잔인하게 심판했다. 가부장제 사유재산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확실해야 사회질서가 유지된다.
왜 인류는 이런 길을 걸어야 했을까? 엥겔스가 책을 쓴 후로 문화인류학이 크게 발전해서 지금은 그 책의 세부내용들이 많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이 어떻게 남성에게 종속되게 되었는지, 그 핵심 고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엥겔스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십 년 전쯤 잡지의 여행 코너에서 아직까지 모계사회로 남아 있는 중국 모쒀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성과 사랑, 자녀 양육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나는 모쒀족 사회에 매료되어 그곳에 살게 된 한 싱가포르 변호사의 책을 발견하고 계약해서 출간했다. 추 와이홍의 <어머니의 나라>다.
추 와이홍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일중독자로 살면서 부와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가족도 아이도 없었고 인생을 돌아볼 때 미소를 머금게 할 만한 게 없었다. 같은 로펌에서 일하는 남성 변호사들은 그녀처럼 하루 15시간씩 일하면서도 모두들 일상생활을 살뜰하게 챙겨주는 아내와 사랑스런 아이들이 있었다. 그녀는 싱가포르의 호화주택을 떠나 중국 오지에 자리 잡고 있는 모쒀족의 세상에 합류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늘 이질감을 느끼고 살던 저자에게 난생 처음 편안함을 선사한 모쒀족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모쒀족은 혼인을 하지 않으므로 아이들에게는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모르거나 알더라도 가족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이모, 외삼촌,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공동양육한다.
이 체제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자유롭게 연애를 한다. 대개 젊었을 때는 파트너가 자주 바뀌고 중년이 되면서 한 파트너에게 정착하게 된다고 한다. 파트너는 가족이 될 수 없고 상대방의 가족과 교류하지 않으며 연애 문제는 이 사회에서 전혀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년이 된 여성은 대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 독립된 방을 갖는데, 연인과는 밤에 그 방에서만 만난다. 그래서 연애가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시스템이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이점이 있다고 보았다. 여성이 자유연애를 하면 신변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쒀족 여성은 대가족이 함께 사는 집의 자기 방에서 남성을 만나므로 안전을 보장받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점은 아이들이 안정된 상황에서 양육된다는 것이다. 일부일처제 핵가족이 기본인 사회에서는 부모 사이가 나빠지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이혼, 별거, 사별을 하게 되면 아이들의 삶이 위협받고 벼랑 끝에 내몰릴 수도 있다.
개인의 욕구가 폭발하면서 이혼율이 치솟았고, 그 이후에는 결혼율이 격감하고 있다. 결혼제도가 몰락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출생률 자체가 급감했으나 서구에서는 혼외출산율이 절반을 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증대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이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들은 안정된 환경에서 양육되어야 한다. 왜 아이들의 삶이 부모의 연애에 휘둘려야 하는가?
모쒀족의 고유한 생활방식은 중국의 현대화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개인의 자유와 양육의 안정성을 양립시킨 체제의 이점은 각자의 삶 속에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아이는 혼자 키울 수 없다. 지금은 각자가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누구나 각자의 상황에 맞는 양육 공동체, 돌봄 공동체를 만들어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면서도 친밀한 관계가 주는 정서적 만족감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