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인분공부 Jan 19. 2022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결혼도 출산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

이 책은 비혼 여성이 두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 경험과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보호대상아동의 현실, 가족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내 얘기다. 나는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책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도모했다. 그 결과 출간 전 은유 작가, 이다혜 씨네21 기자, 문화인류학자 이민경 작가, 청소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예지 작가의 추천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입양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지내던 출판계 동료 김기중 더숲 대표와 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도 기꺼이 추천사를 써주었다.  

   

은유 작가는 『있지만 없는 아이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의 작품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청소년 노동자 현장실습생의 현실을 알렸다. 나는 은유 작가라면 분명히 보호대상아동의 현실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입양한 아이들은 양육자가 없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보호대상아동이었다. 보호대상아동은 부모가 보육시설에 맡기거나 처음부터 친권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공권력이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한 아이들이다. 이중 부모가 친권을 포기하여 입양이 되는 아이들은 소수에 그치고, 다수의 아이들은 양육하지도 않고 친권을 포기하지도 않은 부모와 법적인 관계는 유지한 채 보육시설을 전전하며 성인이 된다.      


은유 작가의 추천사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나는 가족이 필요해), 제도의 한계를 알고 (결혼하면 후회할 확률이 높아), 생명의 귀함을 알고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지), 이러한 세 가지 앎의 조건이 ‘비혼 여성이 아이 둘을 입양한다’는 자기배려의 실천을 낳았다. 정상적인 삶에 대한 환영을 지운 자리에 저마다 자기 삶의 지도를 그리도록 용기와 지침을 주는 책이다.”     


나는 처음에 ‘자기배려’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언어에 민감한 문학가가, 철학과 인문학에 소양이 깊은 저자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런 표현을 썼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폭풍 검색을 했다. 역시나 인터넷 검색을 한 게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무식이 탄로 날 뻔했다. ‘자기배려’는 미셸 푸코의 개념이다. 미셸 푸코는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인기가 많았던 사상가라 책을 읽은 적도 있지만, 별로 기억에 남은 건 없다. ‘자기배려’는 자기와 적절한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타자와 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고, 주체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한다. 자기의 영혼을 돌보는 성찰의 과정이며, 단순한 인식을 넘어 실천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아무튼 무지 좋은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다혜 기자는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 2』를 펴냈는데, 그 책들을 통해 그가 여성과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아동학대에도 깊은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다혜 기자는 추천사에서 공개 입양한 친구 가족을 보며 남의 집 어린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굳건해졌으며 그것이 “출산하지 않은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는 의식적 선량함”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없는 여성들이 조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든 아이의 복지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지 늘 주변에서 보아왔다. 

     

나는 이십 년 전쯤 중국의 모계사회인 모쒀족에 대한 기사를 보고 그들의 모계사회가 연애와 자녀 양육, 여성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2017년 영국에서 출간된 『The kingdom of women』을 보고 국내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다. 모쒀족 사회에 매료되어 그곳을 고향으로 삼게 된 싱가포르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나는 이민경 작가에게 그 책의 번역을 의뢰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으로 페미니스트 이론가 겸 활동가로 널리 알려진 그의 약력에서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을 보고 의뢰한 것이었다. 불어 번역가들은 대체로 영어 실력도 출중하고 영어 번역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이민경 작가는 『어머니의 나라』를 통해 번역가로 데뷔했고, 이후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제작들을 여럿 번역했다. 

     

나는 당시 이민경 작가를 번역가로 섭외하면서 내가 두 아이를 입양해서 일종의 작은 모계사회를 구현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당시 내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원고를 이메일로 전달하며 추천사를 부탁하자, 두 시간 만에 장문의 추천사가 도착했다.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희망으로 제시하고 싶을 때마다 언급했던 그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이민경 작가는 여러 언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여성학, 문화인류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다. 유학을 떠나 현재 파리에 있다고 한다. 지금도 가장 주목받는 페미니스트 이론가 중 한 명이지만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이 처음 인상처럼 참 진취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는 너무나 부럽게도 나보다 19년 연하다.

     

김예지(코피루왁) 작가는 『저 청소일 하는데요?』로 주목했던 작가다. 그는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리는 삶을 선택했고 그것을 당당하게 공개함으로써 수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깊이 좌절하거나 아니면 경제력이 있는 남자와의 결혼을 해결책으로 여기기도 한다. 몇 년 전, 한 여성 그림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아무리 그림으로 인정받아도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지 못한다는 점에 좌절한 것 같았다. 당시 그 작가를 섭외할 생각이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당신 탓도 세상 탓도 아니라고. 다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꿈을 강요하는 세상이 그런 비극을 낳은 것 같았다. 편집자는 내 꿈이 아니다. 그냥 밥벌이 수단이었을 뿐이다. 밥벌이 수단이라고 대충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 아닌 이상 그 일을 필요로 하는, 그 일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남들이 알아주는 일이 아니더라도 밥벌이로 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이다. 

     

김예지 작가는 예쁜 그림으로 내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나는 하말넘많의 『따님이 기가 세요』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그를 섭외했다. 그 책처럼 따뜻한 기가 흘러넘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줌으로 인사를 나눈 그는 ‘사회 불안 장애’로 고통받던 과거를 고백한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에 나오는 모습과 이미지가 정말 비슷했다. 단순한 터치의 그림인데도 자신의 개성을 잘 잡아냈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에 “내가 모르던 아름다운 연대의 세계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알려주었다. 이 가족의 서사가 어쩌면 내 삶의 선택지를 좀 더 넓게 좀 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는 찬사를 보냈다.    

  

김예지 작가 덕분에 내 책은 따뜻하고 밝은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럴 리가. 책은 저자를 닮을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문제를 고민하는 게 취미인 습성이 어디 갈 리 없다. 가족과 관련된 문제들은 이 사회의 모든 구조적 모순과 연관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책은 겉은 에세이, 속은 사회정치 책이 되어버렸다. 책을 가장 먼저 읽은 지인은 “대선 후보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라는 감상을 토로했다. 그게 집필 의도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7736308&orderClick=LEa&Kc=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6335645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7087405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의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