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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Aug 09. 2020

최고의 책을 만드는 의사결정 방법 1

경영의 핵심은 의사결정이다. 자잘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좋은 의사결정을 많이 내리는 회사가 좋은 회사이고 그렇지 못한 회사가 나쁜 회사다. 편집자는 비록 최종 결정권은 없더라도 기획 및 편집과 관련된 수많은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된다. 회사마다 편집자의 권한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서 특정 도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담당 편집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 도서에 대해 파악하고 관여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체로 어느 회사나 담당 편집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메타인지가 논의의 출발점  


출판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출간도서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책을 출간할 것인가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지만 충분한 논의 없이 경영자가 단독으로 결정하거나 기획자의 제안에 아무도 반론을 하지 않아 경영자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승인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과정을 직원들도 경영자도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워하면 제안자 이외에는 왜 계약했는지 모르는 책들이 줄줄이 계약된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각 구성원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해당 출판사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해당 편집자나 마케터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파악을 기초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자신이 무지한 영역에서는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부와 외부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자료를 찾아봐야 한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메타인지는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마케팅 부서와 영업 부서는 시장 경험이 많더라도 업무 성격상 과거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런 책은 몇 부 팔렸다를 기준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기획은 몇 개월에서 몇 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수요가 확실한 분야나 모방 전략에는 마케팅과 영업 부서의 의견이 옳을 때가 많고 선도자 전략, 차별화 전략의 기획에는 사회를 선도하는 엘리트, 얼리어댑터 그룹(저자, 기획자 등)과 밀접한 편집 부서의 의견이 더 타당할 때가 많다. 


솔직한 피드백이 창조적인 집단을 만든다     


픽사의 창립자로 디즈니의 인수합병 이후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회장을 역임했던 에드윈 캣멀의 『창조성을 지휘하라』는 창의성이 생명인 모든 기업, 특히 문화산업 종사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픽사와 디즈니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만, 에드윈 캣멀은 작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거액을 들인 시장조사 같은 활동이 아니라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 디즈니의 ‘스토리트러스트’라는 조직 내부의 피드백 시스템이라고 한다.      


픽사에서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에 대해 토론한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을 잘 이해하는 영리하고 열정적인 직원들을 모아놓고 현재까지 진행된 결과물을 놓고 솔직한 피드백을 통해 문제점을 찾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에드윈 캣멀은 픽사의 작품들이 처음에는 형편없지만 이 피드백 과정을 거치며 꾸준히 향상된다고 한다. 이 ‘브레인트러스트’ 외에도 매일의 업무 성과를 동료들이 함께 점검하는 ‘데일리스 회의’, 특정 작품을 총결산하는 ‘사후분석 회의’ 등의 피드백 시스템이 바로 픽사의 경쟁력의 근원임을 그는 『창조성을 지휘하라』 전체에서 강조한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하는 게 뭐가 특별하다는 걸까? 에드윈 캣멀은 도서 전체를 통해 ‘솔직함’을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솔직한 피드백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각자 자기 얘기만 하고 끝나지 말고 실제로 작품을 개선하는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아무리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경영자나 상사에게 찍힐까 봐 주저하고 해당 도서의 담당자가 기분 나쁠까 봐 부정적인 의견을 삼간다. 혼자 엉뚱한 의견을 제시하면 바보같이 보일까 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한 마디 하면 맞장구치며 묻어가기도 한다. 친한 사람의 의견이 자신과 같으면 재빨리 동의하지만 의견이 다를 때는 입을 다문다.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의견이면 가만히 있고, 다른 의견이면 반론을 제기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의견 자체가 아니라 의견을 제시한 사람만 보고 동조하거나 반대한다.     


에드윈 캣멀은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사내에서 솔직한 피드백을 가능케 하려면 경영자가 직원 간, 부서 간 계속 변화하는 역학 관계를 면밀하게 살펴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요인을 파악하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또한 회의할 때 논의를 활성화하는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픽사에서는 ‘브레인트러스트’에서 스토리 구조 개선에 통찰력이 뛰어난 두어 명의 사람들이 논의의 방향을 잘 잡아준다고 한다.

 

경영자나 상사가 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편집자는 자신의 담당 도서에 대한 동료들의 피드백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진지한 견해를 제시하고, 어떤 사람이 잘 모르면서 대세에 묻어가는 건지, 어떤 사람이 내 눈치를 보며 할 말을 하지 않는지를 살펴 솔직한 피드백, 생산적인 피드백을 요청하고 업무에 반영해야 한다. 출판사는 예외적인 책을 제외하고는 애니메이션처럼 한 작품에 회사 전체가 매달리지는 않는다. 편집장이나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대개 담당 편집자가 제시한 안들 중에서 채택한다. 그러므로 담당 편집자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가가 해당 도서의 품질과 성공을 상당 부분 좌우한다.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한 사람들을 골라 논의에 참여시키는 ‘브레인트러스트’와는 달리 인력 자체가 적은 출판사에서 ‘솔직한 피드백’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초에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을 채용해야 한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은 그 주제에 대한 궁금증이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이나 창피함, 동료들의 호감을 얻고 싶은 마음을 능가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므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스스로를 속이려는 경향도 적어 메타인지가 발달하며 상대방이 자신과 의견이 달라도 모르는 것을 깨우치게 되면 오히려 기뻐한다.

      

심리적 안정감과 규율

     

회사의 모든 업무에는 직접적인 담당자, 그리고 그 업무와 깊이 관련된 사람들이 있다.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 불필요한 간섭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섭섭해하거나 별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내 업무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반발하면, 동료들은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입을 닫아 버리고 가끔 예의상의 맞장구나 쳐주게 된다. 귀한 시간을 내어 검토하고 조언했는데 의견이 다르다고 부정적인 감정적 대응을 마주하게 되면 아예 관심을 끄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에는 편집장이나 심지어 경영자도 악역을 맡지 않으려 하므로 업무에 대해 소소한 지적을 하지 않고 직원들을 내버려 두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솔직한 피드백에서 단절되면 점점 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고 일을 잘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을 상실하게 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조직행동학자 에이미 에드먼슨은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강조한다. 심리적 안정감은 화기애애하게 지내려고 동료들이 불편할 만한 얘기를 삼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에 대한 우려 없이 부정적인 의견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뜻한다. 또한 회사에는 ‘심리적 안정감’과 ‘규율’이 모두 필요하다.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고 해서 회의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회의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규칙들이 필요하고, 각자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끼치는 영향력은 전문성 및 직급과 담당에 따른 책임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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