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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은 Nov 30. 2021

새벽

수학능력시험 D-Day

동이 튼다. 서랍장 위 먼지를 손으로 쓱 훑은 후에 이불을 걷어올린다. 조금이라도 자 두어야 다가온 또 다른 오늘의 삶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을 알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를 않는다. 피곤한데 머리는 맑아지는 기분, 알싸하게 상쾌하고 맹한 기분. 그거.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나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찍는 문제들 모두 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라운 행운이 내게 따라주어 대다수가 정답으로 처리될 수만 있다면 안정적으로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을 텐데, 라는 미련한 희망을 좀처럼 버릴 수가 없다. 그동안 공부를 꾸준히 열심히 해왔다기보다는, 적당한 노력을 기울여 오며 이미 무척 고단하고 지쳐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만 좀 하고 싶다. 내내 착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빈껍데기로만 사는 듯한 기분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던 시간들에 끊임없이 무고한 의미를 부여해가며 차곡차곡 쌓아왔지 않은가, 딱 오늘까지. 열정을 강요받는 시대에 태어나 그에 적당히 순응하며 살아온 나니까, 그렇다면 나는 충분히 어느 정도의 행운은 기대해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의 말을 거역한 적도, 엄마의 기대에 어긋난 적도,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해를 입힌 적도 없이 살아왔다. 아주 미친 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진 않았지만 늘 일정 수준의 성적을 유지해 왔다. 매해 '타인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고 시작하는 성적표를 받아왔다. 이 정도면 그러니까 나에게도, 조금의 행운은 와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닐까. 내가 시발 어떻게 버텨왔는데.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가수는 늘 되고 싶었으나 시도해 보지 못한 꿈이었으니 그것도 시도해 볼 수 있으려나. 새로운 언어를 공부해볼까. 아직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으니까 나가보고 싶기도 하고. 과학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알프스 산맥의 풍경사진이 무척 예뻤더랬다. 유럽여행도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미국사는 삼촌네도 꼭 놀러 가 보고 싶은데. 아니 그보다 그전에, 대학은 갈 수 있을까. 내 눈높이에 맞는 그 대학들 중 하나로 내가 갈 수는 있을까. 정말 그 대학들에 가면 이후의 내 삶은 프리패스처럼 저절로 반짝이게 될까. 연애란 것도 하게 되려나. 글쎄, 앞으로의 삶은 제법 온건해지려나.


...

..

.


자야겠다 이제는.






수학공식을 그렇게 달달 외워댔으면서도 삶에는 공식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해진 수순대로 살아가는 것만큼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은 없을 것이라고 믿던 시절. 눈만 감으면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세계 속을 상상하며 허우적대면서도 눈을 뜨면 그토록 충실하게 현실에 목을 매던 시절.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전부라고 믿게 되었던 시절. 인문계 문과 고삼, 그때 그 나의 시절. 어쩌면 인생 최초로 '실패'를 경험하기 직전의 그때 그날, 그 밤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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