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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은 Apr 29. 2024

'우리 집'이라는 가장 낯선 공간

Home but not sweet home

딸칵,

문이 열리고.


현관을 통해 들어가니 살짝 나무 냄새가 났다. 벽들이 시멘트가 아닌, 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단단하지 않은 벽을 손끝으로 스윽 쓸어보면서 들어선 집 안에서는 적당한 선선함이 느껴졌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자 제법 큰 벽난로가 있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보드라운 갈색의 소파가 'ㄴ'자로 놓여 있었고, 나무로 된 커피테이블이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벽난로 왼편으로는 TV가 있었고, 그 위로는 적당한 장식들과 함께 널따란 거울도 벽에 붙어 있었다. 소파 뒤편으로는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보였고, 벽난로 오른편은 부엌이었다. 거실과 부엌 사이에는 내게는 꽤 높게 느껴지는 카운터가 있었고 거기에는 역시나 나무로 된 스툴-키가 큰 의자-네 개가 놓여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곳이 이제부터 내가 살아갈 공간이라니, 내 집이라니.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크리스마스 시즌에 찍었어서 양말도 보이고 그렇다.


너무 낯설었다.

숲 속 산장 같은 분위기라서 '집'에 왔다는 느낌보다는 어딘가로 멀리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이런 곳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것이 어쩐지 영 불편하고 어색했다. 이것이 꿈이라면 얼른 깨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는 하고 있었다. 꽃다발까지 사서 설레는 표정으로 공항에서 나를 맞이해 주던 그의 얼굴이 생생하고, 이 순간 바로 옆에서 "우리 집"의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설명해 주는 그의 목소리가 내 귓등을 때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편안한 마음이 되질 못했다.


일주일만 더 한국에 있다가 올 걸..

지금쯤 울 엄마 아빠는 뭐 하고 계시려나..

내 동생은 뭐 하고 있을까..

울집 강아지들 누나 안 보고 싶어 하고 있으려나..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들만 요동을 칠 뿐이었다. 어쩐지 점점, 그의 목소리가 아늑하게 희미해져 갔다.








여느 때처럼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텅텅 비어 있었다.

가구들까지 싹 다 없어졌으니, 나로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텅 빈 집에서는 그 당시 우리가 키우던 우리 집 강아지만이 나를 맞이해 줄 따름이었고. 멍하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고, 잠시 앉아 있었던 걸로 나는 기억한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어쩐지 희미하고, 그다음으로 기억이 나는 것은 어쨌거나 내가 엄마에게 설명을 들었던 것을 기억하려 애쓰면서 엄마가 말했던 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 그리고 그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짐들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그 정도...


훗날 엄마와 나의 기억은 서로 심하게 엇갈린다.

엄마는 내게, 이사 갈 날짜와 이사 갈 집을 이야기해 줬는데 내가 고새 잊어버리고는 원래 살던 집으로 가버렸던 걸로 기억하고 있고, 나는 엄마가, 이사 갈 날짜와 집도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은 상태로 이사를 가버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나의 기억도 희미한 부분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엄마가 맞을 수도 있겠다고 인정하고는 있다. 가구 하나 없이 텅텅 빈 집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가득했던 그 빈 집에 쭈그려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던 그 시간들 속에서 황당하긴 했으나 불안했다든지 걱정됐다든지 했던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엄마의 기억이 어느 정도는 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런.


아무튼 그렇게, 중학생이던 나는 2년쯤 정도 살았던 빌라에서 나와 새로운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새로운 집에서 그때부터 시작하여 결혼하고 이렇게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까지 쭈욱 살았으니, 나로서는 나의 '찌그러졌으나 낭만이 있었던 그 시절'을 함께해 준 소중한 '우리 집'이 되었다. 재개발로 몇 년 전에 허물어진 그 자리에는 지금은 길쭉한 오피스텔 건물이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이사오기 전까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집. 갑자기 맞이하게 된 새 집.

왜 엄마는 이런 큰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내게 이 집을 보여주지 않았던 걸까 의아해했던 집.

나에게는 새로운 집이지만, 사실은 참 많이 낡은, 그래도 빌라보다는 공간이 넉넉하고 앞마당과 옥상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 낯설고 어색했던, 그 집.



 






겨우 잠에 들었다가도 몇 번을 깼다. 시차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갑작스러운 이 낯선 공간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옆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색했다. 혹시나 깨울까 봐서, 숨을 죽이면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가 잠귀가 밝은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방 안이 고요하고, 바깥이 캄캄하니, 여러 가지 소리들이 바깥에서부터 방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저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 같은 것이 여러 번 들려왔다. 나중에는 익숙해진 코요테 무리들의 소리였지만, 미국 온 첫날이었던 내가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전에도 미국에 온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미국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그가 일을 나가면 나는 이해는 잘 안 가지만, 뭐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TV를 틀어놓고 아침을 챙겨 먹었다. 마음 같아서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데워서 흰쌀밥에 계란프라이랑 함께 먹고 싶었지만, 내가 사는 그곳은 한인마트는 물론이요 한국인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아니 일단,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시리얼이나 요거트로 아침을 먹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최대한의 곳들을 걷고 산책하곤 했다. 다행히 빌리지-말하자면, 그 동네의 아주 작은 다운타운-를 걸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한 바퀴 휘 돌곤 했었다.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다만, 혼자였을 뿐.



운전을 못하던 나를 위한 배려로 그가 빌리지를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한 거리의 집을 구해놓고 나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못된 상사를 만나 하루에 기본 열두 시간씩 일을 하던 그가 안쓰러울 뿐, 원망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아름다운 풍경의 사진들을 보내드리면서 예쁜 모습을 나누곤 했다. 나는 건강했고, 아직 젊었으며, 새로운 집도 한국에서 살던 그 집과 비교하면 훨씬 넓고 운치도 있고 좋았다. 담백한 성격의 그와 하나하나 맞춰가고, 미국에 사는 것에 대해 배워가면서 하루하루가 내게 조금씩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할 말을, 하고 싶은 말들을 잃어갔다.



미국온지 열흘 뒤에 찍었던 사진. 청솔모가 다가와서 무척 놀라고 좋았다고 썼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기, 새로운 습도.

신혼생활이자, 신국-새로운 나라-생활.

'같이'이지만 '혼자' 익히고 배워가야 할 것이 사방천지인, '혼자'인 시간이 대부분인 그런.


2013년의 여름은 뜨거웠다.

그가 보지 않을 때 울었다.

웃기도 했다. 오래가진 않았다.



아래층의 또다른 공간

세상에서 가장 낯선 우리 집에서 꾸역꾸역 잠을 청했다.

그 집에서의 첫날처럼.

그리고, 점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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