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한 지 오래되었지만 외부로부터 꾸준한 유입이 있는 글 한토막이 있습니다. 의외였고, 실수였습니다. 그런 것에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 줄은, 또 그런 방식이 노출에 적합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리로서, 거기로부터 물어보셨지요. 이제야 떠올라 답하는 것을 용서하세요. 하지만 그 이후의 기록들로 충분히 대신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것으로도 시원한 대답이 못 되었다면 말씀드립니다. 아직 눈치채지 못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읽히지 않으니까요. 여긴 수도원처럼 답답한 공간이지요. 규칙이 있고, 개입도 있습니다. 그들의 결에 맞춰야 합니다. 찬양처럼 해야 합니다. 그들의 눈밖에 나면 끝장입니다. 알고리듬에서 제외될지도 몰라요.
개시로부터 많아야 오십 명 봐요. 양일에 걸쳐서요. 그중에 얼마는 자기 홍보하는 사람들이고요, 고마운 작가님들도 계세요. 순수한 독자는 만나기 힘들어요. 작가들끼리 품을 나누며 눈치나 보고 있다니 참 우습죠. 아마 그럴 거예요.
어느 날짜를, 시간대를 겨냥하든 큰 차이는 없어요. 키워드도, 카테고리 침투도 별 소용이 없고요. 고질적으로 플랫폼 자체의 영향력이 미미해요. 게다가 다른 신규 지역들도 많이 개척되었고요. 그래도 썸네일 낚시는 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되는 생태계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안경 쓴 분께서 물어보신 제3의 눈은요.
하하.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제법 유쾌한 사람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잘 지나치는 바람에 귀엽기까지 하는 편입니다. 진지한 것, 심각한 것은 가능한 기록으로 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삶 속에서는 자연스레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웃겨줄 수도 있습니다. 막 웃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이 허물어지니 별것 아닌 말에도 웃어주는 거겠지요. 제3의 눈이 그거예요.
물론 가끔은 버릇처럼 말실수를 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쓸데없는 분위기를 내비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사죄하는 마음으로 한동안 다시 기록에 몰두합니다. 눈을 점검하기 위해서요. 그렇게 오가며 삽니다 지금은. 그렇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직도.
답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민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당신께서 어떤 마음일지 아예 모르지는 않습니다. 적적한 마음에 소개팅 어플을 이용해서 당신을 만난 적도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요.
소개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문제가 있어요. 도통 교감이 안 돼요. 단순한 작용도 일어나질 않는 것 같아요. 운동하는 걸 보여주면요, 흘끔거리기나 해요. 그리고 더듬어 다음날 따라 해보기도 해요. 그건 좋아 보여요. 기뻐요. 그런데요, 남몰래 자기식대로 구분 짓고 자세에 이름 붙여 그럴듯한 운동법으로 돈 받고 파는 사람들도 있어요. 트레이너처럼요. 그건 속이 상해요. 나는 그렇게 할 줄을 모르겠거든요. 그런 사람이 내 안에는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존재가 있었어요. 근원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기꺼이 세상의 필터가 되고 연결자가 되었어요. 그게 사이 간間, 인간인 것 같아요. 삶의 요소들을 소개팅 시켜주는 거예요. 목소리로, 몸짓으로, 그밖에 예술과 또 다른 수많은 방편으로. 삶 자체로.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마음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에요. 물질이 끼면 마음은 굳어요. 그 상태를 조심하세요. 목표만으로 이루어진 심장을 조심하세요. 피가 굳지 않도록, 원치 않는 세포가 자라지 않도록 스스로 진찰하세요.
나는 그녀가 아니에요. 불사하고 총알이 빗발치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는 나는 갈 수 없어요. 그것은 나에게 아직은 두렵습니다. 그러니 체념해주세요. 체념하면 유순해져요. 체념은 포기나 좌절의 상태가 아니에요. 체념諦念은 하느님帝의 말씀言을 마음에 두는 것念이에요. 일용할 양식으로의 침재된 나아감일 테지요.
노사연 님의 목소리에 따르면 만남이란 우연이 아닌 바람이라지만 아무래도 저는 우연인 편이 마음에 들어요. 인연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러니 사려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건 작은 팁인데요. 탈피하기 전의 랍스터처럼 며칠 굶으며 침잠해보세요.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