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11월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느낌이 맞았어. 입동이었어. 올해는 내 몸이 딱 맞췄다. 조금은 건강해진 걸까.)
춥다.
집안 기운도 손바닥 뒤집듯 순식간에 마르고 닳았다.
집이 연로해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내가 보살펴 줘야 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는 이 순간이 기뻐(물론 여름에도 슬픔을 대신 닦아줘야 했지).
내가 열을 뿜어줘야 할 시기가 온 거야.
그러면 첫째로 잘 먹고 잘 자야겠지.
그래야 움직이는 핫팩이가 될 수 있어.
그래도 올해는 좀 너무해서 해가 떨어지면 뜨거운 게 생각 나. 사랑도 하고 싶고.
나는 이 무렵이 주는 분위기도 사랑하기 때문에 잠에서 깬 김에 거실에 나와 있어.
손이 시렵고 코가 시렵고 배도 고파.
낮에 배추 된장국 끓여 놓은 게 있는데 데워먹을까?
아니야 가스불은 왠지 켜고 싶지 않아.
새벽 두 시야.
최악의 2번초 불침번처럼 뽀글이나 해먹고 싶다.
실은 찬장을 몇 번이나 여닫았어.
그러다 테이블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카모마일 티백을 발견했어.
이거면 될 것 같아.
만약 라면을 먹는다면 콧물 나고 땀도 날 거고 나는 금세 식어버릴 거야.
입안도 텁텁해질 텐데 또 양치하기는 귀찮아.
내일의 기분도 무거워질 거야.
(무거워 무그 ㅁㄱ...) 머그면이라고 알아?
그 기분을 내보려고 머그컵에 차를 담았어.
포크숟가락도 찾아냈어.
온기면과 향건더기 걸어서 후루룩 먹으려고.
다행이야.
언제 그랬는지 쟁여 놓은 티백이 많아.
루피시아 사쿠란보도 있어.
유통기한은 안 볼래.
사랑은 그런 거 없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얼그레이도 있고 작두콩, 도라지도 있네.
보이차도 보이고.
냉장고 안에도 있어.
대추, 모과, 유자... 그리고 겨우내 실컷 라떼 해먹을 생강청도 있지.
모두 기성품이지만 말이야...
네가 보내줬던 청귤청 생각난다.
생각보다 나는 부자구나.
안 되겠어.
내일은 순댓국을 해먹어야겠다.
여름에 잘한 일이 하나 있지.
돼지내장 사다가 손질해 얼려둔 거.
때때로 삶은 먹는 게 전부인 것 같아.
낮도, 밤도, 별빛도, 먹고 먹히지.
책상도, 공기청정기도 그런 은유들로 한가득 살아있어.
요즘 던전밥이라는 만화를 보고 있는데 재미있어.
라면도 다 먹었고 이제 교대해야겠다.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