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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som Jun 14. 2020

집이란 무엇일까

일요일 아침, 공영방송 KBS에서 집에 대한 다큐를 내놨다. 건축학자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골목길 주택의 신비함과 재미를 논했지만, 정작 그는 강남 아파트에 산다. 그는 사회적 성공과 편리함의 상징인 지역과 주거형태를 이용하는 건축학자다. 그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도 같은 위치, 동일한 상황이라면 강남 아파트에 살텐까.




고덕강일 공공주택지구 분양이 떠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주 일요일, 나는 여느때처럼 늘어지게 잠이 들어있었고 오후 2시는 그 어느때보다 달콤했다. 월요일이 근접하지 않아 초조함은 덜하고, 즐거운 토요일이 막 지난 직후여서 아직 기분이 몽글몽글한 상태.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건 엄마다.


"따알, 분양공고 좀 봐. 직장생활 백날 해봐야, 그돈으로 집을 못사니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부동산이야. 몇억씩 없어도 투자할 길이 있으니 한번 봐봐."




몽글한 내 기분이 무너져 내리고, 현실로 돌아온 순간이다. 아 맞다. 나는 아직도 집이 없지. 내 나이 마흔 하나인데... 심지어 결혼도 안한 이 나이에, 나는 집도 절도 없지.  갑자기 어깨뭉침이 심해지는 기분이고 허브향으로 머리를 가득 메워야 할것처럼 몽롱했다. 몽글에서 몽롱으로 넘어사는데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집의 모습은, 휘경2동의 2층집이다. 내가 말하는 집은 경제적 가치나 주거의 형태에 따른 기억은 아니다. 나는 너무 어렸고, 월세가 챙피한 것인지 모르고 살 시기였으니 그때의 기억은 할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과 천방지축인 언니와 매일같이 싸움박질하는 아빠와 큰아버지의 모습. 부엌 한칸에 세들어 살던 시립대 1학년 학생이 있는 그곳, 2층집 말이다.




집이란 곳은 걱정이 사라지는 곳이다. 밖에서 갑질하는 사람이 모욕을 줬어도, 친구들의 주택가격 상승의 기쁨을 부러워하는 순간도 잊어버리는 공간. 적어도 나에겐 그런 공간이었다. 나 하나만 생각하고 존재의 형태를 존중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보장해 주는 곳이 바로 집이다. 아마도 내 기억속 2층집은 그것이 가장 확실한 시공간 이었던듯하다.


지금 사는 집도 좋다. 조금 부담되는 월세지만 나의 월급으로 충분한 충당이 가능하고, 범이가 집의 많은 살림살이와 경제적 도움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범이는 충실한 반려자다. 17층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더없이 아름답고, 그런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는게 미안할 만큼 사계절, 아니 매일 매순간 감동을 준다. 깎여진 돌과 숲으로 보이는 나무, 공기와 적당한 소음. 18층의 층간 소음까지도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보다도 내게 소중한 시공간이다.




아, 내 집이 없다는 것은 나쁜 것일까?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마음의 빈곤함을 주는 것일까?든든함이 사라진 오늘을 살아내는 것일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지만 이곳이 늘 최상은 아니기에 다른 장점이 있는(산을 포기하고 편의시설이 갖추처진 등의) 장소로 이주하면 된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된다. 지겨우면 떠나도 된다. 물론 집이 있다고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 아니다. 내 집을 빌려주고, 형편에 맞게 이주해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점점 멀어져 간다. 집은 방해받지 않는 시공간의 개념보다 최상의 투자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엄마가 찬물을 껸진것도 포인트는 아파트에서 편한 생활을 영위하라는 것이 아니라 갭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부동산 값은 오를테니 핫한 이곳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역시 나도 서울사람이다. 남들 다 관심 갖는데 역시나 나 또한 살펴볼 일이다. 신청자격 체크리스트와 모집 공고를 출력했다. 공고문에 익숙하지 않은 범이는 1페이지 출력을 해 출력장수가 많다. 그래도 종이가 아까우니 클리어파일에 껴서 일요일 오후 욱씬한 머리를 붙들고 공고문을 본다. 한글인데도 모르는 단어가 있구나. 단어가 아니라 제도의 뜻 같은 것. 입찰공고문을 수도 없이 봐와서 이런 문서는 익숙한데 기분이 익숙치 않다. 자격이 생각보다 까다롭고 청약통장만 있다고, 집만 없다고 되는일도 아니었다. 아, 그래도 공부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찬찬히 보기나 하자. 몰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투자에 한번 뛰어들어보려고 발버둥을 쳐본다. 아 슬프다. 이러고 있는 내가 조금 슬프다. 이게 남들하는 현명한 짓(?)이라는걸 알면서도 이러는 내가 그냥 싫다.




그래도 나는 오늘 소소하게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서 핸드폰을 열어두고 오랜만에 브런치도 쓰고 즐겁다. 매일 남의 책만 만들어주다가 내 콘텐츠가 생성되는게 얼마나 좋은가? 내 기분을 어루만져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돌아가 다리 뻗고 누을, 시원한 집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두 다리로 마음만 먹으면 하루 1만보를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시간이 나면 최애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살아 있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많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남과 비교하며 슬퍼하는 날들을 줄이려 한다. 그들은 내 삶을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지 않던가. 사는 주체는 나 스스로가 되어야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 역시 돈 쓰니까 좋다. 블루투스도 사고, 미니소에서 미니한 소확행이 오늘의 나를 기쁘게 한다. 내일 아침 9시 30분 팀원들과 시궁창 같은 얼굴을 할 지언정 그래도 나는 지금 당장 행복하다!




오늘을 살아줘서 고맙다.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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