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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som Jun 07. 2017

호르몬의 문제라고 탓하고 싶다

이십대부터 삼십대까지 이어지는 습관의 변천사

내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직장으로부터 온다. 관계, 사람, 부족한 능력. 그 이외에도 탓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일단 그렇다. 스트레스는 풀어야 맛. 누구에게 풀어야 할까. 어느 카드를 돌려야 내 직성이 풀릴까. 20대 때는 아니 20대 초반에는 수다를 엄청나게 떨었다.  

최대리가 말이야


그랬다. 성자라는 친구를 매 퇴근시간에 불러냈다. "성자야 나 할말 있어". 무슨 이야기로 시작해 무슨 이야기로 끝날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성자는 늘 시간을 내주었다. 최대리가 나를 괴롭힌 이야기. 최대리가 했던 말 가운데 황당했던 이야기. 최대리가 했던 사소한 말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최 누군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최대리 이야기를 주 3회 이상 만나 씹어댔다. 그렇게 수다로, 인사동 아지오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늘 같은 메뉴를 시켜놓고 서너시간씩 떠들었다.



이십대가 중반으로 넘어가고 후반이 되자 나는 씀씀이를 늘려갔다. 나에 대한 보상심리, 나를 위한 위로 그 모든 것이 신용카드가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한 것

이라는 변명으로 나는 퇴근후 화장품 가게를 들렀다. 집에 돌아오면 비슷한 색의 립스틱과 쉐도우가 즐비했고, 컴팩트 파운데이션은 브랜드별로 있었으며, 아이라이너가 색깔별 타입별로 늘어져 있었다.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들고다니는 화장품 가방으로도 넘쳐나서 수납장에 한가득 화장품을 채웠다. 롯데백화점 1층에서 이것저것 사면서 샘플까지 끼워들고는 그 물건을 뜯지도 않은채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 화장품을 쓰면 모델처럼 아름답고 빛날것만 같았다. 지금의 그, 아니 그당시의 그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자유로울것만 같았다. 그렇게 화장품을 샀고, 취미생활을 즐겼다. 피아노를 배운다고 키보드를 지르고, 고즈넉한 거리를 찍고 싶다며 DSLR을 샀다. 읽지 않는 만화책을 수도 없이 쌓았고, 어느새 책장을 둘러보면 같은 책이 2권 이상 있기도 했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영어학원 1년치 등록비 등 온전한 나를 위한 것으로 소비했다. 물론 지금도 아주 많이 달라진건 아니다. 그렇게 카드값에 허덕였고, 때론 그 카드값을 위해 현금서비스로 돌려막기도 한 시절이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말이다.




이십대 막바지에서 삼십대로 넘어갈즈음 여행을 그리도 질러댔다. 분기에 한번씩 일본을 드나들었고, 일본에 한번 갈때마다 물건을 질러댔다. 물건이란 그런 것이다. 뭐든 가지고 있으면 그저 든든한 것들. 그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내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 그것이 신발이 되기도, 미술용품이 되기도, 자질구레한 악세사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또 나를 소비했다. 빚을 내서라도 가야하는 여행이라고 말하면서, 연신 나는 여행을 다녔다. 다녀오면 또 가고 싶었고, 언제나 살 궁리를 했다. 일본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일본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해 일본에서 살지 못해 독립을 했고, 3개월 임대로 살다가 A형 간염에 걸려 다시 집으로 불려들어왔다. 소비하고 또 소비했다.


풍족한줄 알았다





그렇게 흘러간다. 최근에는 테니스와 미싱과 미술을 배운다. 배우는 것으로 충족하는 삶. 나는 다시 취미생활을 소비하며 삶을 살고 있다. 1년 넘게 배운 테니스는 선생님의 태도에 질려버려 지난주에 그만뒀고, 미싱은 최근 기계를 집에 들여오면서 가장 뜨거운 내 삶의 활력소다. 미술은 언제나 미적지근 하지만 온와하게 곁에 두고 싶은 것이 되어버렸다. 은근하게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그것.


삶은 끊임없이 나를 도전하게 한다. 내가 파닥파닥 살아있다고 하게끔 의식하기 위해 돈을 쓰고, 배우고, 어딘가 떠나고, 남에게 내 뜻을 전한다. 그렇게 나는 계속 도전하고 소비한다. 난 오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

나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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