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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som Sep 18. 2016

37살에 찾아든 불안

24시간 365일 나를 지켜보는 이것



추석도 벌써 다 지났다. 장작 5일이라는 시간이다. 얼마나 길고 긴지, 얼마나 짧고 짧은지 앉았다 일어나면 하루가 지나있고, 먹고 치우다 보니 5일이 다 지났다. 직장인에게 5일이라는 휴가는 1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호사 중의 호사인데 알차지 못하게 보내 약간은 속이 쓰리다. 알차다는 의미에는 어딘가 떠나야 함이 포함되어 있다. 어딘가 가서 잠깐이라도 묻은 먼지를 톡톡 털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이렇게 시간만 보냈다.


충분히 계획할 수 있었다. 충분히 우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자리잡은 저 안의 돌맹이가 잠시 나를 좀 누르고 있다는 핑계가 있었다. 그 돌맹이는 무엇이었나 하니 '불안'이란 또라이다.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애먹이곤 한다. 이렇게 오늘까지도 말이다.


내 안의 내가 만든 함정

언제부턴가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대학에 가서는 그런일이 없었다. 아니 뭐 먹고 대학생이 그럴 긴장감이 있을 틈이 있나. 그저 먹고, 놀고, 연애하기에 바빴지. 생업이라는 직장에 뛰어들고부터다. 증권회사에 취직한 나는 뭘 모르고 첨에는 그저 울기만 하는 울보였다. 그냥 서럽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일을 한다는 것, 돈과 바꾼 내 자존심과 굴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불안과는 좀 다른 종류의 괴로움이었다. 그저 나는 굴욕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찢어진 내 모습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낭비벽 습관 때문에 말도 못하게 지금 모은돈이 없는것도 다 내탓.


증권사 본점에 있는 동안은 지점에 갈까 두려웠고, 지점에 있는 동안은 승진을 못할까 두려웠고, 그래서 벗어난 잡지사에서는 모자란 내 기획력에 두려웠고, 자꾸 보직을 둘러대는 정신없는 상급자 덕에 하루하루가 두렵다. 오히려 어릴때, 아무것도 모를때는 현상은 그저 현상일 뿐. 나와 좀 멀어지는 연습이 되어 있었다. 아니 멀어진 나였다. 그것과 이것은 별개. 그래서 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사람. 그런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겁쟁이가 되었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나는 한참이나 남은 내 시간안에서 나를 갉아먹고 옭아매고 있었다. 씁쓸하고 찬 사회를 맛보고 나니까 세상이 무섭고 사는게 무섭고, 그러다 보니 변화가 두려워졌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세상이 다 바뀌는 것처럼, 내 자유를 모두 앗아간 전지상황이 되어버리고 만다.


후배와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뭐 모임이라고 해봐야 1시간 반정도 책읽은 것을 떠드는 시간, 총 8명이 모여서 이야기 하고 잠시 샛길로 빠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제목에 시선이 빼았겨 덜컥 하겠다고 했는데 매주 일요일 어중간한 오후 2시를 앗아가는 건 좀 달갑지가 않다. 대신 유시민이라는 작가를 얻었다. 글에서도 작가냄새보다 정치인의 향이 풀풀 나지만 그래도 얻은게 있었다. 진보성향의 이 사람이 주는 변화의 두려움에 대한 가치를 말이다. 나는 겁쟁이고, 또라이라고 애칭하는 '불안'에는 이유가 있기에 그럴만도 하다는 위로를 책으로 부터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많은 숙제를 내줬다. 변화에 대해 나는 어떠한지, 배운 사람들은 변화에 잘 적응한다고 하는데 그 배운사람에 나는 해당이 안되는 것인지. 근본적인 두려움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등등 끊임없이 자문하고 채찍질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사치다. 세상을 이기려고 노력하라는 말도 유치하다. 어중간한 상태로 나답게 글로써 하소연 하는 추석연휴 닷새날. 그렇게 내 서른일곱번째 가을이 물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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