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som Sep 27. 2018

왜 유목민이 되어야 하는가

39세의 이직준비

이틀전 한양도성 4코스를 걸었다. 산책이 아닌 암벽등반에 가까운 고통이 따르는 코스였다. 1,2,3코스를 완료하고 4코스 하나만 남은 시점, 이것의 끝이 왜 이리도 더디었는지 미루던 숙제를 드디어 끝냈다. 코스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오르막길이 계속되거나 내리막길이 계속될때면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다. 계속되어 힘든것은 내 다리가 견뎌주고 있으나 정신이 힘든것은 좀 더 고차원의 문제였다.

계속된다는 것에는 두가지가 있었다. 동일한 간격의 계단을 지속적으로 오르는 것과 크고 작은 위치와 모양이 다른 돌 사이를 지속적으로 오르는 것이다. 둘다 다리에 무리가 갔다. 하지만 인간이 조금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그곳은 힘들면서 지겹기까지 했다. 동일한 간격, 동일한 풍경. 나는 계속 똑같은 모양의 계단을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파서 이기도 했지만 지겨운 풍경을 견디지 못해 뒤를 돌아보곤 했다. 올라온 길도 보았고,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은 반복적인 일을 할때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공장에서 매일 같은 반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유독 우울증환자가 많고, 자살도 많이 한다고. 실제 내친구가 다니던 대기업의 공장에서도 쉬쉬하며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고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땐 박스에 뭔가를 끼워맞추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단순히 아무생각 없이 하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말이다. 반복적인 일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 일이던가.


지금의 직장은 기획을 하고 책을 만들고, 매번 다른 기고자들을 관리하며, 바뀌는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응대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달 다른 책이 나오고, 매달 다른 기고자들을 만날 수 있는 일이지만 반복적이라는 것은 내가 이미 그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부품이 되고나니 나는 해야할 일만 있을 뿐, 하고싶은 일이 없어졌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니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하겠지만 그룹사 대기업에서 부품처럼 일하다 뛰쳐나온 수많은 대리들의 하소연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퇴사를 부추기는, 회사가 아니면 모든 가능성이 있을것 같은 쏟아지는 책들이 인기가 많은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품이 되어가고 그 부품이 녹이 슬어 더이상 작동이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기 때문이다. 


요즘은 업무량이 예전의 살인적인 수준이 아니다. 주말이 있는 삶이기도 하고, 야근도 1시간 내외로 살만하다. 제일 중요한 인간관계를 제외하면 잠시 방문을 열고 책을 보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흐뭇해질 수도 있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 위아래로 치고 내려오는 뾰족한 말들과 공포분위기, 행여나 내 실수로 여러사람이 행복해지는 광경이라도 목격하는 날에는 분해서 몇날며칠 잠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분함은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을 때면 증폭되어 막상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쯤이 되면 내가 거품칠을 했는지, 헹궜는지 기억이 나지 안을 정도다. 이런 몰입도라니. 이런 정신으로 고등학교때 공부를 했었으면 카이스트도 수석으로 들어갔을 위인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회사를 빠져나가는 것이다. 녹슨 부품에 기름칠도 하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 처음은 불편해도 다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거기에 더 뾰족한 말들이 오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될것 같은 두려움. 이미 늦은 시기 같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는 요즘이다. 나이가 먹으니 일자리는 좁아지고, 일자리가 좁아지니 경쟁이 치열하고. 그간 내가 젊어서 열려있던 수많은 일자리들이 마치 내가 능력자여서 불러들이는 착각을 했었는데 나이가 들고보니 알겠다. 가장 좋은 조건이었던 나이가 있었음을. 39세는 뭐든 결정하기가 좋다. 이직을 마음먹기도(마음먹은것과 채용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퇴사를 결정하기도. 애기를 낳고 집에 눌러앉을 결심도 모두가 결정하기가 좋다. 마치 내년이면 터닝포인트가 될것만 같은 앞자리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두렵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렵기만 하다. 이직을 해도 두렵고, 퇴사를 해도 두렵고, 존재는 여전히 버겁고 두렵다.

작가의 이전글 가슴을 쳐내려가도 답이 없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