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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som Sep 29. 2018

기억하고 있나요?

39세 노처녀의 기억법

'나비잠'이란 영화를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존경하는 정재은 작가의 작품이다. 정기용 건축가의 다큐인 '말하는 건축가'를 보고 팬이 되었지만 이미 이전부터 팬이었나보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증권사에 근무하는 여자주인공의 심리에 아릿아릿한 마음으로 그시절 눈물을 흘렸으니 코드가 맞다고 해야하려나 보다.

'나비잠'은 내가 좋아하는 3가지 요소가 가 들어가 있다. 일본, 기억상실, 소설가. 일본 여자주인공과 한국 남자주인공의 사랑이야기지만 소설가 일본 여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는 뻔하면서 아릿하다. 손예진이 알츠하이머로 나왔던 영화를 볼 당시 나는 첫 연애를 시작했다. 사랑했던 기억을 잃어버리는 손예진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쏟았던 첫 남자친구의 모습은 지금도 흐릿하면서 생생하다. 한창 연애중인 시절, 서로가 보고 있어도 보고 싶던 시절 상대가 기억을 잃는다는 건 당시 상황으로 대입했을 때 매우 슬프고 억울한 일이다.


기억은 연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슴 저 밑을 후비기에 연애와 이별의 경험이 기억의 중심에 있는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감정이 스치고 지나간 모든 사건과 사람들, 그 기억에서 사라지는 모든 순간들은 서글프다. 최근 몇년, 아니 근 1~2년 사이만해도 기억이 저릿저릿하다. 지난주에 사려고 생각해뒀던 책이름은 당연히 생각이 나질 않고, 어딘가에 써두어야지, 내일은 신청해야지, 오늘은 사야지 했던 모든것들이 몇분 사이에 머리속에서 사라진다. 치매인가 심각하게 걱정하다가도 4년전에 업무처리했던 숫자 등이 기억나는 걸 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사는것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해서, 생각이 안나서 행동하지 못해서 미래가 자꾸 사라지는 것이다.


기억은 미래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의 경험을 잊어버리면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것이 실수라고 깨닫는 순간 이미 늦었다는 것도 모르고, 그것이 처음 실수인 것으로 기억한다. 계속 기억이 업데이트 되면 사는 것은 지금보다 불편해지고 그만큼 손해보는 일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야만 하는 기억도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기억, 나 스스로를 원망했던 기억, 포기하지 못한 꿈 때문에 아픈 기억들. 이 모든 것은 잊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기도 싫던 기억들이, 어렴풋해질 무렵이면 그 또한 괜찮았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지금이 괜찮기 때문에 그때 역시 괜찮았다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용서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까지도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용인하는 것. 마치 내가 지는 것만 같다.


모든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온다. 아빠, 엄마, 직장상사, 후배, 초등학교때부터 나를 지켜봐온 친구들. 믿음이 커서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무조건 내편이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화살을 날릴 때 늘 정중앙에 꽂힌다. 시내 어느 화장품 가게에서 느낄 불쾌감, 식당에서의 무시당하는 태도, 억울한 상황들. 스쳐지나가버리면 곧 잊고 마는 것이다.


39살은 기억하기보다 기억할 일이 더 많은 나이다. 어제의 일, 그제의 사소한 사건들의 색이 옅어지는 내 정신력은 나를 서글프게 한다. 이렇게 글을 썼다는 사실 조차도 일주일이 지나면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억되는 삶을 살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 내가 능력자라만 살아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다. 오늘의 영화 내용의 한 장면, '우연'을 기억하는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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