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그 너머
큰 트렁크 6개와 기내용 트렁크 2개를 화물로 부치고도 남은 가방이 3개였다. 모두 내 아이와 내 어머니의 막내딸을 위한 물품들이었다. 아이에게 가져갈 물건을 며칠을 사다 날랐다. 말썽이던 디스크로 허리와 두 다리가 고통스러웠지만 내 아이가 좋아하는 밑반찬들을 부지런히 만들었다. 그러나 내 손에서 탄생한 음식들은 맛은 그럴듯했지만 맛깔난 색이 아니었다. 내 솜씨에 좌절한 순간‘엄마에게 나머지를 만들어달라고 할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행히 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집에 와 계시던 노모에게 내 아이에게 가져갈 반찬을 만들어달라고 할 뻔했다.
짐을 꾸리는 며칠 동안 부모님에 대해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먼 도시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녔던 네 명의 아이들을 위해 부모님은 수시로 짐을 부쳤다. 홀로 남으신 어머니는 지금은 제각각 나이 들어가는 당신의 아이들을 위해 전국 각지와 멀리 이국땅으로 보낼 택배 박스를 포장하신다. 그러나 나를 돌아보면 그런 부모님의 고된 삶을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고 제대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부모님께 필요한 것들을 해드리기는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마음 쓰는 것에 비할 수 없다. “자식 키워놔야 봐야 소용없다”는 말은 우리 부모님이 나에 대해 가지는 마음으로 딱 맞는 비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크지 않은 것 같다. 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가족들을 챙기고 그러고도 남는 마음이 있다면 가끔 부모님 생각을 한다고나 할까? 문득 죄스런 마음에 전화기를 들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사는, 부모님에게는 이기적이고 무심한 사람이다.
그런데, 가끔 생각해 본다.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키워온 내 자식들은 훗날 어떻게 살까? 과연 그들의 부모인 늙은 나를 자식들보다 자주 떠올리며 인사할까? 제 자식들을 넘어 부모인 나에게 이르는 마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낌없이 준 내가 자식의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로 새겨져 있을까? 아마도 내 아들과 딸은, 커가는 동안 부모인 내가 있던 자리에 제 세상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채울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나는 볼 것이며, 그렇게 되는 게 어쩌면 순리이다. 오히려 그렇지 못할 경우 내 자식들은 불행한 삶을 시작할지 모른다.
내 아들과 딸은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아이는 자기만의 세상을 개척하며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 만약 내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도 나로부터 분리되지 못하고, 내 의견을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는 삶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아마 ‘덜 떨어진 놈’이라는 소릴 듣지 않을까? ‘덜 떨어진 놈’이란 ‘부모로부터 덜 떨어진 놈, 부모로부터 거리 확보를 못한 놈, 부모로부터 덜 독립한 사람’의 의미는 아닐까? 사전적 의미야 어떻든 성인이란 자가, 자기의 영역으로 들어온 식구들보다 지나온 시절의 식구에 매여 시간이 멈춘 듯 살아간다면, 새롭게 탄생한 그 가족이 그려낼 일그러진 모습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원가족끼리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과 병적으로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구별된다. 가족상담 장면에선 여기서 야기되는 문제가 흔하고도 흔하다. 내 부모의 희생 속에서 내가 성장했듯 나의 자식들도 나의 희생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모인 나보다는 제 자식들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로부터 받았던 모든 아름다운 마음을 그들의 자녀에게 베푸는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이러하듯 내 반 아이들의 부모 또한 비슷한 삶을 살지 않을까? 부모로부터 와서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온 마음을 주면서 살지 않을까? 교사가 만나는 학부모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이 마치 자녀를 소유한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아이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여 우려스럽더라도, 그 부모들의 삶의 여정을 이해한다면 조금 마음이 누그러질지 모른다. 한 발자국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면 아이뿐 아니라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도 연민이 생기는 법이다.
한 인간의 삶에서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물론 이때의 독립은 정신적 독립을 일컫는다.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잘 형성하고 유년을 지낸 아이들이 청소년을 지나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성인들이 건강한 개인으로 우뚝 서고 타인과의 관계, 일과의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주도적이다.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을 만나 안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건강한 부부관계를 형성한다.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상대에게 얽매이지 않고, 부부의 삶을 꾸려가더라도 배우자만을 위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들의 정신은 건강하며, 상대방으로부터 덜 영향받고,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이다. 그리고 상대 또한 자신과 같은 고유한 개별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며 부부생활을 한다.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통해 좋은 부모로 성장해 간다.
교사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이들과 부모가 현재 생의 어느 단계쯤에 와 있는지 이해하는 것도 학생들을 위해 도움이 된다. 아이의 부모들이 그 부모로부터 독립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한 일이겠으나, 그렇지 못해 만드는 불협화음이 내 학생들에게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도 있다. 그리고 교사가 부모의 희생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럴 때 1인의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시간만 한 선물이 없다. 시간이 지나야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절절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내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낸 뒤에야 나를 있게 한 부모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 아이들이 떠난 뒤에야 부모에게로 회귀하는 마음을 보면 시간은 우리에게 계획한 바가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