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순간들

학생 그 너머

by 알버트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엄마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따스하게 토닥토닥 마음을 알아주지도 않았고, 칭찬도 안 해줬으니까. 인정도 안 해주고, 때때로 말도 막 했으니까. 그런데, 여든 다섯 엄마는 지금도 날 위해 밑반찬을 만든다. 봄이면 집 마당에서 나는 온갖 푸성귀와 시골 장에서 나는 산나물을 종류별로 사다가 신문지에 말고, 여름이면 갓 딴 옥수수를 쪄서 꽁꽁 얼린다. 계절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그렇게 택배 상자에 담겨 현관 앞에 놓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만 부어 끓이면 좋아하는 국을 먹을 수 있도록 첨가할 양념까지 싸서 보내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먼 곳에서 올라오셔서 내가 출근하고 없는 사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창고까지 정리 정돈해 놓고 내려가셨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그게 우리 엄마가 날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쯤 자기 분석과정을 밟던 어느 날, 그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식이 아니어서 사랑하는 줄 몰랐을 뿐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힘껏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한 나는 성인이 되고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와 먼 마음으로 살았다.


자식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내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모로 사는 일은 희생정신이 부족한 나에게 내린 신의 배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떤 종교도 가지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부모로 사는 삶이 무척 고단했던 모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프게 배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조금씩 성장한 것 같다. 부모가 되어보기 이전에 나는 결코 내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고 더구나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의 유년을 그려보는 일은 하지 못했다. 나는 이기적이고 미성숙했다. 그리고 부모가 된 이후에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쓸쓸한 일이긴 하지만 그게 자연의 섭리 일지 모른다는 것도 이해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내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나를 보면 결코 부모의 사랑을 가늠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부모는 어쩌면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은 사랑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부모들도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유년기와 성장기 속 상처와 슬픔, 좌절과 고통 그리고 사랑의 경험을 묻혀 부모가 되었을 것이며,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들 생각에 옳고,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르칠 것이다. 우리가 부모에게 원망이나 미움이 있을 수 있듯, 우리들의 부모 역시 그 부모에 대한 원망과 미움, 서운함과 분노로 일생을 보냈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을 안고 부모가 되었고 자식의 끼니를 해결하느라 삶을 바쳤을 것이다. 그런 내 부모의 삶을 생각하면 측은하고 애처롭고 고맙고 존경스럽다. 그러니 지금 와서 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린 시절의 원망을 접고 감사하는 것이 전부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젊은 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내 부모의 방식이 그 당시의 부모로서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이제 이해한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양육기간을 돌아보면 경제적 상황, 내 근무 여건, 심신의 상태, 부부관계, 시댁이나 친정과의 관계, 내 꿈을 좇는 것 속에서 힘들어했고, 그 시절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나 돌이켜보면 후회되고 잘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 미안하고 자책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우리는 사람마다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학부모마다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아이와 학부모 사이에 서 있다. 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교사가 중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되 부모의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사랑할 때 그의 방식이 아니라 자녀가 바라는 사랑의 방식을 취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를 대할 때 그것이 부모의 사랑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귀띔해 줄 수 있다. 내가 그랬고 우리의 부모들이 그랬듯 사람들은 성장환경, 원가족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장하는 동안 했던 경험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나 대인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알코올, 도박 같은 중독 문제를 가진 가정에서 자란 사람, 방치되거나 가정폭력이라는 참담함을 겪으며 자란 사람, 무엇에든 부정적으로 보거나 신경질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 평생을 먹고사는 문제로 고통 속에 산 사람들을 만나보면 성장환경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부모의 사랑법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럴 때 교사인 그대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더 높고 넓은 세계로 도약한 사람들을 안다. 어둡고 험한 유년의 경험을 가졌지만 그 속에서도 작고 빛나는 순간을 발견하고, 보석 같은 그 힘으로 암울했던 그림자를 지워나간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핍된 환경을 극복하도록 돕는 힘은 힘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부모, 조부모, 때론 옆집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있다.


나의 경우는 사람보다는 자연에서 얻었던 위로가 컸던 것 같다. 부모와 선생님의 도움이 컸더라도 어쩌면 나를 힘나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자연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렸을 적 기억 중에서도 고요한 자연 속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특히 생각나는데, 나는 그것을 자연과 교감했던 순간이라고 믿고 있다. 아지랑이 오르던 보리밭을 가만히 지켜보던 순간, 진달래를 꺾으러 산 이곳저곳을 쏘다닐 때 거친 나뭇가지들에 생채기를 입던 순간, 천지에는 봄꽃이 피어나고 온 몸이 나른하던 오후 저 멀리에서 들리던 뻐꾸기 울음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순간이 나에게는 그렇다. 빨간 감이 매달린 늦가을, 내가 좋아하던 남학생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던 숨 막혔던 순간이 그렇고, 계곡에서 동네까지 연결된 개울물에 얼음이 언 겨울날 마치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전사들처럼 의기양양하게 줄지어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고 마을로 돌아왔던 기억을 떠올리면 행복감이 찌릿하게 차오른다.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소중한 것을 가슴에 품은 것처럼 세상 두려울 것이 없도록 만들고, 그런 보물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기억들을 대치할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는 이런 기억이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주는 힘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부모 형제들과 보냈던 따스한 시간, 친구들과 모여 소꿉놀이, 숨바꼭질, 깡통차기를 하고, 선생님에게서 칭찬을 받았던 기억, 교실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만들던 시간일 수도 있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온정, 자연이 빚어내는 감탄의 순간들과 아이들에게 심어진 작은 순간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빛을 낸다. 가슴속에 숨어 우리가 고난과 역경을 넘어설 때 위로하고 그 시간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마치 해리포터가 죽고자 했던 마지막 순간, 부활의 돌이 불러낸 부모님과 시리우스 블랙이 그러했듯, 우리가 넘고자 하는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 용기를 내어 발 디딜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교사인 우리가, 선생님인 그대가 만들 수 있는,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빛나는 순간들은 얼마나 많은가? 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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