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중 감상한 영화들
1) <동네사람들, 2017> _ 임진순 감독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대가 전혀 되지 않는 작품이었는데 예상 외로 좋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특히 배우 마동석의 이미지복제 문제를 이야기하며 비판을 하던데 동의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범죄도시, 2017>가 대표적이지만 '현실에서 법이나 도덕,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마동성의 힘과 폭력으로 해결하며 대리만족을 주는' 그런 작품은 아니다. (설령 작품마다 배우 마동석의 이미지가 매번 같다고 해도 현재 이미지에서 굳이 다른 걸 시도할 필요가 있을까?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도 있는 거고 특정한 연기에 특화된 배우도 있는 것인데...더구나 배우 마동석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도 국내에 몇 없는 마당에..)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고사성어가 있다.
줄탁동시: 닭이 알을 깔 때에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트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한다.
바로 '줄탁동시'였다.
그렇다면 왜 이 고사성어가 떠올랐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간단히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기철(마동석)'은 시골의 마을에 체육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곳에 있는 고등학생 '유진(김새론)'은 실종된 친구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철'과 '유진'이 서로 얽히면서 실종 사건의 이면에 있는 진실에 점점 접근하게 된다.
인류 역사를 쭈욱 살펴보아도 내부에서 곪은 문제는 그 안에서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대부분 외부에서 온 사람에 의해서다. 그렇다고 외부의 힘만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잘못된 질서를 바로잡을 땐 내부에서도 진실을 쫓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 과정을 아주 잘 표현했다.
별 넷
2) <쓰리 빌보드, 2017> _ 마틴 맥도나 감독
처음 줄거리를 보았을 때 예상했던 내용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전형성'에 머물지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작품에선 '증오'와 '분노'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진다. 특히 마틴 맥도나 감독이 '증오'와 '분노'의 차이에 대해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증오'와 '분노'는 비슷한 것 같아도 그에 수반되는 결과가 달라진다. 명확한 대상을 향하는 '분노'와 달리 '증오'는 '증오심'을 불러 일으켜 진실을 보고자 하는 눈을 가려 혼란만 일으킬 뿐이다. 이 작품에서 딸을 잃어야만 했던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 또한 '분노'보다는 '증오'에 휩싸인 인물이다. 그러나 '윌러비'(우디 헤럴슨)의 자살과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 그리고 경찰서의 화재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자신의 대척점에 있던 경찰관 '딕슨'(샘 록웰)과 화해하고 '분노'의 대상을 찾아나선다.
(별개로 이 작품에서 '용서'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면도 있지만 특별히 언급하진 않았다. -사실 '용서'보다는 '화해'에 가깝지만- '용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2010>이다.)
별 넷
3) <봉오동 전투, 2018> _ 원신연 감독
거의 모든 개봉관에서 내려 갈 때 즈음 뒤늦게 영화관에 방문하여 보게 된 작품이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난한 전쟁 영화였다. 적당한 추격씬과 전쟁씬, 캐릭터 간의 갈등과 애국심의 고조, 그리고 무난한 주제까지... 다만 '해철'(유해진) 캐릭터가 중심이 없이 너무 널뛰는 것은 단점. 게다가 마치 혼자만 게임을 하는 듯한 칼 난무는 왠 말인지... 무난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면 실험적인 건 하지 않는 것이...
별 셋 반
4) <기묘한 가족, 2018> _ 이민재 감독
B급 영화는 수준이 낮거나 감독의 역량이 부족해서 B급 영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좀비영화'의 클리셰들을 비틀면서 현실풍자, 혹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할 블랙코미디였다면? 이러한 영화는 '피터 잭슨'이나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감독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작품의 감독은 그러한 역량은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좀비 영화'의 역사를 꿰뚫고 '좀비'라면 사죽을 못쓰는 사람이 '덕심'으로 만들었어야 했지만... 물론 좀비 영화의 고전부터 현대작까지, 예를 들어 <이블 데드> <새벽의 저주> <웜 바디스> 등등 에게서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온 것은 좋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 작품 만의 매력은 어디에??
주제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클라이막스도 없는 그저 '시도'만 있는 영화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도는 적극 권장되어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그 좋은 배우들 데려놓고 이렇게 만들어버리면...)
별 둘 반
5) <리얼, 2016> _ 이사랑 감독
전설, 아니 레전드 작품이 '넷플릭스'에 업로드되었다길래 찾아보았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좋은 평(?)들이 많아 특별히 언급은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진지한 이야기를 병맛으로 만들면 찬사를 받지만 병맛 이야기를 진지하게 만들면 대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만 이야기한다. (이처럼 주인공에게 최소한의 감정이입도 되지 않는 작품이 그 동안 있었던가...)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배우 최진리(설리)의 연기력의 잠재성을 발견 한 것 정도?
별 하나
(평생 동안 별 하나만 준 영화는 딱 네 작품이었는데 - <메달리온, 2003>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2003>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2012> <자칼이 온다, 2012> - 7년 만에 다섯 번째 별 하나짜리 영화가 등장했다)
6) <런던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2015> _ 벤 팔머 감독
사실 보려고 했던 영화도 아니고 아. 이런 작품이 있었었지? 라고 생각되었을 정도로 지나쳤던 영화였는데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중간부분부터 보게 된 영화다. 결론적으로 "몇 없는 내 취향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결국 끝까지 보게 된 영화. 가볍지만 진중한, 진중하지만 코믹한, 선한 사람만(예외 인 인물이 있긴 하지만 귀엽게 봐줄 수 있을 정도) 등장하는 그런 작품이다.
그런데 원제목은 'Man up'인데 제목을 이렇게 바꾼 건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2003>을 참고로 한 걸까? (본래 이 애니메이션의 원제목도 'Tokyo Godfathers' 이다.)
별 넷
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 _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거나 6, 70년대 할리우드의 모습을 모르거나 당시 사회의 모습들을 알지 못한다면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 더구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강렬한 '서스펜스'와 시원한 '복수극'과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더더욱.
영화를 보면서 타란티노 감독의 전 작품인 <재키 브라운, 1997>을 계속 떠올렸다. 강렬한 서스펜스는 없어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만의 유쾌한 장난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유쾌한 장난에 6,70년대 할리우드에 대한 타란티노 감독의 향수까지 곁들여진 아주 착한 요리였던 것.
물론 실제 사건이 마지막과 연결되면서 등장하는 당시 할리우드를 충격에 빠트린 살인자에 대한 타란티노 감독의 '복수'는 아주 시원하다. 그나저나 이 작품에서조차 그의 풋 페티시는 여전했다.
별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