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과 36년만에 나온 후속작 <탑건: 매버릭> 감상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모두 감상하신 분만 보아주세요.
<탑건: 매버릭>은 제가 상영되기만을 기다리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제가 1986년에 나온 <탑건>의 팬이라서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를 기다린 이유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이 후로 완전히 톰 크루즈의 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와 <탑건>의 '매버릭'이란 캐릭터는 서로 닮아있습니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해내고 또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마치 톰 크루즈가 영화에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과도 같죠.
참고로 <탑건: 매버릭>을 보기 전에 <탑건>을 봐야할까라는 잠깐의 고민을 했었습니다. <탑건>을 보지 않아도 후속작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라는 후기도 보았고... 또 유튜브에서 검색만 하면 줄거리 정도는 나와있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영화라는 예술 장르는 직접 보지 않으면 그 작품만의 호흡을 체감할 수가 없죠. 그래서 Apple TV를 통해 먼저 <탑건>을 구매하여 보고 바로 다음 날에 <탑건: 매버릭>을 보았습니다.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죠.
일단 <탑건>의 감독이 '토니 스콧'이라는 것을 이 때 알았습니다. 비록 고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었는데 그의 대표작을 이제 알았다니... (그의 1998년 작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State>를 저는 항상 대중영화의 '마스터피스'로 이야기합니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야기하듯이 <탑건>과 <탑건: 매버릭>은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로써 전투기 액션씬의 스펙타클한 연출이 매력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요소보다는 이 영화에서 '매버릭'이 가진 인물의 깊은 '밀도'가 이 영화를 멋지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속작을 연출한 조셉 코진스키 감독도,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톰 크루즈 또한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탑건> 이후 36년만에 나온 후속작임에도 불구하고 매버릭이 <탑건>에서 가지고 있었던 감정선이 <탑건: 매버릭>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버릭이란 인물의 깊은 밀도를 만들어주는 것은 그의 '상실됨'으로부터 오는 '내면의 비어있음'*에 있습니다. 그는 그에게 있어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지 못했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본능과 직감에 의지하는 위험한 비행이 파트너인 구스와의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이는 결코 구스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았죠. 그리고 이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려했던 그에게 그의 상관은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매버릭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그제서야 알려주게 됩니다. 또 그를 사랑하는 '찰리'의 노력도 있었구요.
(*그의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외로움 일수도 있고 상실감일 수 있고.. 그나마 '내면의 비어있음'이 잘 맞는 단어로 보여요)
그러나 결국 한 사람의 '변화'라고 하는 것은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지않으면 그 기회를 얻기 어렵고 고통과 희생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죠. 그리고 매버릭에게 그 기회는 아이러니하게도 '구스'의 죽음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1986년에 태어났지만 당시에 <탑건>을 보았다면 그저 멋진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를 꿈꾸었을테죠. 그러나 이제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칭하는 나이가 되고 <탑건>을 보니 겉으로 보기의 화려함보다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선택해야하는 '무게'에 대해..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잊혀지는 것들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탑건>을 보는 동안 구스의 죽음 이 후 그의 죽음이 매버릭의 성장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에 대해 기묘한 '불편함'같은 것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영화적으로 물론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맞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현실에선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톰 크루즈는 매버릭이 느꼈을 감정을 영화에서 아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매버릭이 구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저는 다소 빠른 호흡이었지않나 싶었습니다. 또 당연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었어야 할 작품이었지만 그의 복잡한 감정선이 싱겁게 정리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이는 작품이 가진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와 지금 시대가 중시하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감안되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보다 영화에 있어서 더 전문가인 조셉 코진스키 감독과 톰 크루즈는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탑건: 매버릭>에서 구스의 아들인 '루스터'를 등장시키고 매버릭과 루스터의 갈등으로부터 비롯되는 매버릭의 감정은 <탑건>에서 구스의 죽음에 느끼는 죄책감을 불러와 매버릭이란 인물의 밀도를 깊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탑건: 매버릭>에서의 매버릭은 여전히 '내면의 비어있음'은 있었지만 확실히 성장한 '어른'으로 존재합니다. 하나의 예로 그는 루스터에게 그를 계속해서 떨어트린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책임져야할 일임을 알았기에 굳이 해명하거나 하진 않죠. 또 그는 작품 안에서는 자신이 훌륭한 교관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미 완성되어있는 교관이었습니다. 작전 중 아무리 희생이 불가피한만큼 어려운 일이어도 결코 누구의 희생도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팀원에게 극한의 훈련을 감내하도록 하였고 그것을 요구할 때 그가 짊어지는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작품 내에서 젊고 패기넘치는 엘리트 조종사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훈련을 그는 스스로 증명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상부에게 관철시키기위해서 말이죠. (현실에서 이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장담컨데 세계인구의 5%이내라 봅니다. 사실 그러니까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는 거겠죠?)
그러나 이토록 완벽한 리더인 '매버릭'에게도 참으로 풀기 어려운 일이 바로 '루스터'와의 관계 회복입니다. 물론 <탑건: 매버릭>에서도 루스터의 관계회복 과정이 조금은 손쉽게 이루어지긴 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탑건>으로부터 이어지는 매버릭의 고뇌와 무겁기만하지만 그럼에도 옳은 선택을 해야하는 과정을 이 영화는 '매버릭'이란 인물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톰 크루즈도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그러한 매버릭을 표현하고 있구요. 아니, 어쩌면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와 함께 '매버릭'이란 인물은 '영화'를 사랑하는 톰 크루즈 모습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향간에서는 영화다운 영화였다.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작품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펙타클한 전투기 조종 혹은 액션씬이나 엔터테인먼트로써 높은 만족도, 실제 모든 훈련을 소화한 톰 크루즈나 출연배우들의 노력도 좋지만 이 작품의 가장 훌륭한 점이라 생각하는 '매버릭'이란 인물의 '이야기'에 대해 좀 더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뭐 나는 다른 것 다 필요없고 멋진 블록버스터를 볼거야! 라고 한다해도 이 작품은 분명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얼른 영화관에 가서 <탑건: 매버릭>의 감상을 추천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