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안다는 것
엄마는 종종
아들이 좋아한다고 LA갈비를 재워 주신다.
그 밖에도 장가간 아들의 식탁을
어찌나 신경 쓰는지
과일이며 반찬거리며 이것저것 장을 봐주신다.
참 고맙기도 하지만
장을 봐 온 식재료는
아내의 일거리로 변모되기에
괜히 아내의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아들의 입맛을
너무나 잘 아는 시어머니가 있어
좋기도 하지만
살짝 부담도 될 듯하다.
어느 날인가
엄마 생신이 가까워 오자
아내가 물었다.
"자기 어머님 어떤 음식 좋아하셔?"
음..
마이구미?
"에이 그런 거 말고 음식 중에~"
음.. 아 그거! 꽈리고추 멸치볶음
아내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린다고, 마이구미랑 멸치볶음 해드리라는 거야? 아니 어떻게 어머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된 밥을 좋아하는지
고기는 얼마나 익혀야 먹는지
어떤 과일만 먹는지
수박씨를 먹는지 뱉는지, 포도씨를 삼키는지 까지
알고 있는데
나는 엄마가
마이구미와, 돼지바, 짱구(지금은 신짱이 되어버린) 그리고 꽈리고추 멸치 볶음만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어릴 적 우리 집 식탁에는 늘 꽈리고추 멸치 볶음이 올라왔다.
난 멸치볶음도 별론데 쭈글쭈글한 고추를 볶은 맛이 싫었다.
비주얼도 별로라 손이 가지 않던 반찬 이었는데
꾸준히 식탁에 올라오는 걸 보고
엄마는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좋아한다고 여겼다.
결혼 후
장모님이 밑반찬을 많이 해주셨다.
거기에도 멸치볶음은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들은 다 멸치볶음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결혼초 아내도 줄곧
멸치볶음을 자주 내줬다.
여자들은 멸치볶음을 좋아해?
아내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더니 답했다.
"음 딱히 좋다기보다 영양소를 골고루 먹기에 식탁에서 멸치볶음 만한 게 없잖아, 두고두고 먹기도 좋고"
여자에게 멸치볶음은
멸치가 식탁 위의 영양제로 변신하는 마법이다.
엄마의 꽈리고추는
비타민C를 더하기 위함 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간은 꽈리고추 멸치 볶음 대신
몸에 좋은 견과류를 넣은 멸치볶음을 많이 해주셨다.
멸치볶음의 트렌드 인가보다.
식품으로 섭취하는 영양소가 가장 좋다 하던데
아들놈 건강하게 먹으라고 해주신 음식을
엄마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착각한 내가 아쉬울 뿐이다.
난 크리스천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만
정말 생각하기도 싫지만
이런 상상을 해봤다.
제사상에 생전에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드리곤 하는데
나는 뭘 올려야 할까?
마이구미와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올리면?
엄마가 살아 돌아와 뺨을 때릴지도 모른다.
나는 멸치볶음 대신
LA갈비를 제사상에 올릴 것이다.
제사를 지내고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