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9월의 회고
한동안 회고를 쓰지 않다가 올해 7월부터 시작했다. 입사 후 초반에는 업무일지라는 이름으로 매일 퇴근 전에 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퇴근시간에 지침 + 피로 누적 +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스킵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만두게 된 것이다. 회사에 새로운 인턴이 오가면서 팀원들만 했던 원온원을 인턴분들과도 하게 됐다. 나에게도 인턴 시절이 있어서 그때 도움을 받았던 사수분, 직원분들처럼 나도 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의 내가 그랬듯 업무일지를 써보는 것을 추천했다.
업무일지를 쓰고 난 후로 하루하루 뭐를 배웠는지 뭘 더 해야 할지 돌아보게 됐다는 인턴들의 후기를 들으며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이번엔 충분히 시간을 들이며 생각을 담고 싶어서 일요일 오후에 주간 회고를 쓰는 방식으로 바꿨다. 퇴근하기 급급했던 전과 달리 느긋하게 카페에서 쓰니 일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지금 나는 한강과 그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다리 위를 달리는 차들이 보이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하루 종일 비소식으로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하늘이 보였다. 아까 전만 해도 다운되었던 기분은 한껏 좋아져서 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설렘이란 단어를 가슴이 두근거리고 고양된 감정이라 정의해 보자. 취준생에서 직장인이 되는 시기가 일에서의 설렘이 가장 컸던 날이 아닐까 싶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지 못하는 일들, 도무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해 답답한 날들로 일이 재미보다 해야 하는 의무에 가까워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직장인의 현실이 싫어서 부러 성장과 열정을 쫓았다. 그런 내가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과 닮아가는 것에 실망했다. 일에서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밖에서의 나를 찾았다.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취미를 만들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여행을 다니고... 이 모든 일들에는 배운 점도 내 삶의 균형을 잡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다만 일에서의 자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일을 하면서 설렘을 느꼈다. 팀원들과 제품의 방향성을 꿈꾸며 재밌게 떠드는 내 모습이 있었다. 왜지? 뭐가 달라진 거지? 이전 글들에서 나는 은연중에 이 일이 맞지 않은 건 아닐지 고민하는 흔적을 남겼다. 그동안 이 설렘을 잊었던 이유는 뭘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떤 일은 조금 못해도 좌절하진 않는다. 가령 작년에 친구와 클라이밍장에 갔었을 때 일이다. 초급 단계에선 수월하게 올라갔지만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다. 반면 친구는 가뿐히 해내고 좀 더 높은 단계까지 도전했다. (물론 친구는 오래전부터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왜 이렇게 못하냐고 스스로 화내거나 미련이 남거나 힘들어하진 않았다.
왜 어떤 일에는 조금 못해도 좌절하는가. 그 차이는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냐에서 오는 것 같다. 내가 이 일이 너무 잘하고 싶어 할수록 반대로 그만큼 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크다.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내 역량을 의심했다. 그러니 그 이상으로 해내지 못할 두려움 때문에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마 실제로 도망을 쳤더라도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는 말처럼 그곳에서 만족할진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일을 사랑하는 마음과 일에서 오는 압박감을 분리하기로 했다. 지금 힘든 이유는 내가 일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그럴 때일수록 이 일을 통해 무얼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려 하자고.
지난 4분기는 비수기라 매출도 사용자수도 떨어졌었다. 비수기라는 걸 그 당시엔 몰랐어서 제대로 대응하진 못했다. 그래서 이번 4분기는 비수기에 유저를 어떻게 지속해서 방문하게 만들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로스 쪽은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거라 토스 콘퍼런스에서 바이럴 관련 영상들과 든든한 파트너 챗지피티와 함께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도들을 준비하고 있다. 제품의 경험 개선에 한정되었던 시각이 시장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해 볼 수 있음에 조금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부툴을 AI 도움을 받아 직접 개발하는 일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회사에서도 AI를 업무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관심도 크고 의욕적인 분들도 많아서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요즘 당근 AI 개발' 책을 같이 읽기로 했다. 또 AI와 관련된 강연, 세미나 등은 참여할 수만 있다면 죄다 신청했는데 실무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
원온원을 하면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지난 한 달을 돌아봤을 때 신호등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불인가요?" 어떤 이들은 초록불에서 노란불로 빨간불에서 노란불로 기복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언제나 초록불로 답했다. 그렇다고 초록불을 답한 이들이 항상 편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때론 같이 일하는 팀원을 어떻게 피드백해야 할지 고민을 나누기도 했고, 일에서 느끼는 한계에 답답함을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일들인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언젠가 해결될 것이란 믿음, 나와 문제를 떼어놓고 바라보는 자세. 그런 태도들 가진 사람들이 회사에 오래 만족하면서 다녔다. 어쩌면 나도 이들처럼 삶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고야 말 테다. 누군가 지난 삶을 돌아봤을 때 어떤 신호등이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초록불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말이다. 그러니 내 삶의 점수는 작년도 올해도 내년도 10점 만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