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간월재 당일치기
울산 간월재를 당일치기로 갔다. SRT로 가는 길 책을 읽다 꾸벅 졸음이 왔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면 목이 아파서 잠깐 깼다 졸기를 한창하다 푹 자버리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도착 시간이 조금 넘어 있었고 막 기차 문이 열린 차였다. 멈춘 역이 어디인지 한참 둘러보다 옆좌석 사람이 ‘울산역이에요.’라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며 짐을 챙기고 내렸다. 울산에 내리자마자 맑고 따뜻한 날씨에 당황했다. 옷을 두껍게 입고 왔는데 땀이 났다. 코트 대신 양털잠바를 입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하곤 잠바를 벗어 배낭에 쑤셔 넣었다.
울산역에서 간월재 등산로 입구까지는 택시로 약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간월재로 가는 루트는 다양했다. 택시를 부르기 전 블로그 후기를 꼼꼼히 확인하고 초심자 코스로 많이들 추천하는 사슴농장 입구를 출발지로 정했다. 올라가는 길은 이미 등산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 가족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올라가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상식 퀴즈를 냈다. “그리스 신화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곤충은?” 엄마는 잘 모르겠다고 하니 그 옆에 있던 아빠가 선수 친다.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정답!” 꼬마 덕분에 나도 토막상식 얻어가는구나. 고맙다 꼬마야.
어떤 한 일행은 동호회 일원인 것 같다. 옆에서 걷던 무리에서 한 사람이 앞서 가던 두 중년 남자를 불러 세우더니 “형님 거기서 쉬시면서 나무에 등치기나 하시죠” 그 말을 듣자 한 남자는 허허 웃더니 등치기 흉내를 냈다. “형님 손뼉 치기가 안되시네” 동호회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껄껄 웃는 모습에 절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간월재까지 등산로는 초보도 괜찮다는 얘기만 들었지 편도 2시간 일 줄은 몰랐다. 30분 정도 올랐을 때 슬슬 발이 아프고 힘이 들어 약간 후회했다. 처음에 우와 우와 했던 풍경도 언제 다 오르냐 싶은 생각이 가득 찼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중간에 쉬지 않고 묵묵히 올라간 결과 1시간 15분 정도 만에 도착했다. 인스타에서 봤던 간월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택시를 타고 간월재로 가는 길 거대한 산봉우리를 향해 도로가 나있는 광경만큼 앞도적이진 않아서 아쉬웠다.
밥을 따로 챙기진 않고 산을 올랐어서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는 판매하는 상품이 단출했는데 컵라면만 가득 쌓여 있는 게 신기했다. 나는 신라면과 진라면 중에 고심하다 ‘역시 라면은 신라면이지’하며 신라면을 골랐다. (진라면파인 분들껜 양해를..ㅎ) 컵라면에 물을 부은 후 휴게소 옆 나무 계단에 앉아 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산을 오를 때와 달리 간월재 정상에선 바람도 강하고 추웠다. 뜨거운 물은 찬바람에 금방 식어버려 면이 잘 익지 않았다. 나는 설익은 면을 꾸역꾸역 먹으며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했다.
하산하는 길에 택시와 몇 번 위치를 잘못 봐서 엇갈리길 수차례였다. 카카오택시 앱에서 현재 위치를 한참이나 멀리 있어서 착각했던 탓이었다. 수화기로 들리는 한숨 소리에 “아.. 괜히 탄다 그랬나” 싶었지만 일단 택시가 온 이상 수수료는 내야 해서 그냥 타기로 했다. 다행히 목소리에서 들렸던 것과 달리 택시 기사님은 그다지 화가 들진 않으셨다. 내가 잘못 봤다고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흔쾌히 넘어가주셔서 다행이었다.
최근에 ‘사람을 안다는 것’이란 책을 읽으며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착지까지 남은 시간에 책에서 추천한 질문을 던져봤다. “어떻게 택시 기사 일을 하시게 되셨어요?”, “택시 기사 일을 하면서 어떤 점이 힘드셨어요?”, “그럼 좋았던 일화도 있었나요?” 그는 원래부터 택시 기사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택시기사들은 고집이 세고 우악스러워 기사님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택시 사업 관리자였던 형이 네가 택시를 해봐라라고 권유하던 게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택시 기사일을 하면 취객이 200원 가지고 돈이 더나 왔니 마니 하는 일이 많아서 힘들어.” “그럼 시내에서 택시 운전하시지 않고 읍에서 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시내에선 사람도 많고 금액이 나오는 데로 내주니까 좋긴 하지.. 근데 내가 여기 동네 출신이니까 길도 잘 모르는 시내보다 나고 자란 여기가 편해” 도착지가 가까워질 즈음 나는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만약 택시 기사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실 거예요?” “택시 기사일 안 했으면 백수였겠지” 울산에 나고 자라 택시 기사 한 길로만 살아온 남자다운 말이었다.